그리고 나보다 두 달 먼저 태어난 친구가 있다.
스무 살 이후로 20년 넘게 함께 사회생활을 해온 친구.
나는 늘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이었고,
그 친구는 늘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변화'가 일상이었다.
이직을 아홉 번이나 했고,
어느새 열세 권이 넘는 책을 쓰고,
강의와 글쓰기 수업을 병행하며
도시계획이라는 전공을 넘어 다른 길을 꾸준히 두드렸다.
반면 그 친구는
단 두 곳의 회사에서 20년을 보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용히, 차분히, 그 자리를 버텨냈다.
가끔 물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오래 다닐 수 있냐?"
그러면 그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글쎄…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
그 말이 꽤 오래 남았다.
나는 왜 그렇게 ‘살다보니’ 살아지지 않았을까.
왜 늘 무엇인가를 다시 시작해야 했고,
왜 그렇게 자주 흔들렸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누군가는
하나의 길을 오래 지키는 사람이고,
누군가는
여러 갈림길을 직접 걸어보아야
비로소 자기 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친구는 관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다.
기대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조직 안에서 묵묵히 자리를 만들어간다.
스트레스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도 않고,
감정의 조절이 뛰어난 사람이다.
그에 반해 나는
무언가를 바꾸고 싶어하고,
의미를 찾으려 애쓰고,
가끔은 아무도 없는 길에 홀로 서기도 한다.
한 사람은 ‘지속’으로 인생을 설명하고,
다른 한 사람은 ‘변화’로 삶을 그린다.
나는 이제 그런 차이를 인정한다.
예전엔 친구의 삶이 부러웠다.
나는 왜 이렇게 자주 흔들리고
이리저리 떠밀리듯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굴곡진 인생은 살아보려 애쓴 사람의 흔적이고,
변화 많은 삶은 멈추지 않은 사람의 증거다.
나는 여전히 매일 쓰고,
여전히 나의 길을 고민하고,
여전히 ‘내가 누구인가’를 되묻는다.
어쩌면 친구가 말한
“그냥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라는 말은
그저 겸손하게 표현한 한 사람의 인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같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냥 살다보니 이렇게 됐지."
다만 그 말 앞에
"나는 내 길을 끝까지 걸어봤어."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