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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제인 Apr 05. 2021

[Apr:4월] 이별, 사월



"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냥 그렇지 뭐, 곧 가니까."



온갖 꽃이 흐드러지던 따사로운 날, 그와 나는 두 달 만에 만났다. 나는 교수님께 오늘 헤어진 남자 친구와 정식으로 헤어지기 위해 오늘의 수업을 결석한다고 말했고, 교수님은 학기 내 한 번은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라도 결석처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주셨다. 감성적인 이유로 나의 출결은 지장 없어졌고, 내 마음은 그때부터 괜스레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두 달 전, 나는 그와 헤어졌다.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군입대를 서너 달 앞둔 그는 내가 좋아한다는 곶감을 사들고 서울역까지 왔지만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열차에 올라타고 본가로 가고 있었으므로. 그렇게 마지막 모습도 만나지 못한 채로 400km가 넘는 거리에 전화로 이별을 통보했다. 나는 첫 연애를 그렇게 부실하게 끝내 놓고서 연애 내내 써두었던 일기를 채 끝내지도 못했다. 이렇게 정성스레 주려고 써놓은 연서를 주지 않는 게 맞는 걸까.






학교 건물 옥상에서 나는 햇살을 업고 난간에 앉아 발을 구르고 있었다.  또 한 번 이별하기엔 꽃들이 너무 예쁜 날이었다. 나는 전날, 안녕 나의 남자 친구로 시작하는 글을 끝맺었다. 전 남자 친구가 된 그에게 얼굴 한번 보자고 한 후에 쓴 글이었다. 내가 계속 갖고 있기엔 아깝고, 그에게 전달하기엔 쑥스러운 노트를 가지고 옥상에서 그를 기다렸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더 본다는 게 설렌 걸까. 아니면 봄이라서 신경계가 어떻게 된 걸까.



철컥-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그냥 그렇지 뭐, 곧 가니까."


그의 머리 뒤로 산에 핀 개나리가 샛노랗게 반짝였고, 아래에선 벚꽃이 흐드러지고 있었다. 철문이 열리고 멀대 같은 그가 걸어왔다.



"이거 내가 쓴 글인데 내가 갖고 있기엔 아쉽고, 어쨌든 너한테 주려 던 거니까.. 그래서. 읽고 태워주라."


"그래? 아... 고마워."


"... 한 번만. 안아보자."



쭈뼛거리며 그에게 안겼던 그 순간이 어설프고 아름답게 저장되었다. 이미 익숙하게 안겨왔던 그의 품에서 벗어나 먼저 철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왔다. 울컥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그의 시야에서 벗어날 쯤부터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꺼이꺼이 울었다. 날은 너무 영롱한 봄인데 나는 처절한 기분. 바삭한 햇빛 사이로 꽃들은 왜 그리 예쁜지, 나는 왜 그와 이토록 철저하게 이별하는지, 누구 하나 붙잡지도 붙잡히지도 않는 것인지. 스무 살, 앳되고 귀여운 이별은 꼭 그 계절이 여러 번 올 때마다 그 생각이 난다. 내가 참 싫었던 날이다.


나의 4월이 잔인한 건 그때부터였다. 벚꽃, 첫 연애, 이별하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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