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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바 May 21. 2020

수요가 있어야만
생각의 교환이 발생한다

우리는 흔히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인간은 주변을 둘러싼 다른 인간들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거래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사회적 관계를 맺기 위해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하며 생각을 교환합니다.


인간은 서로 갖고 있는 생각을 언어와 문화, 예법 등으로 표현하여 교환하지 않으면 가장 기본적인 거래조차도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고객으로서 어떤 편의점을 방문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때 우리는 상점에 들어가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점원에게 가서 돈을 지불하면 해당 물건의 소유권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편의점에 들어가는 순간 점원은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를 통해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확인시켜줍니다. 만약 점원이 거래를 하기 위한 절차로 고객이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길 바라고 있다거나, 상점에 들어오지 않는 방법으로 거래하길 원했다면 아마 점원은 깜짝 놀라거나 고객을 내쫓았을 것입니다.


반대로 점원은 가게로 들어오는 고객을 보며 그 고객이 아무 말 없이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간, 고객이 거래하길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돌아와 돈을 지불하면 그 소유권을 넘겨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고객이 아무 말 없이 물건을 찾아다니는 것은 점원 입장에서 점원이 가진 생각에 대한 동의로 간주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우리가 갖고 있고, 그것이 점원과 고객 사이에 교환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처리하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매번 거래 시마다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만약 양자가 갖고 있는 생각이 위와 다르고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면 물건의 거래는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점에 들어와 원하는 물건을 찾아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가 되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2020년 한국의 상점에서 물건을 거래하기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고 있어야만 교류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인들은 단순히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하고만 교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전달받기도 하고, TV 영상을 통해 TV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전달받기도 합니다. 과거의 전통적 미디어들은 양방향 소통이 쉽지 않았지만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단순히 미디어 제공자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생각을 전달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상대방에게도 내가 가진 생각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주변의 다른 인간들과 생각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을 주고받을 인간들 사이에 서로 그 생각을 주고받을 수요가 있어야 교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에 흔히 말하는 '잔소리'를 주고받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부모는 자식의 매사를 염려하며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하지만, 자식은 본인이 원하지 않는 부모의 일방적인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 조언이 자신이 궁금하거나 원하던 내용이 전혀 아니었고, 해당 부분에 대해 자신만의 입장과 생각이 이미 질서 정연하게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방적인 조언을 '잔소리'라는 명칭으로 부르곤 합니다. 만약 자식이 평상시 궁금하고 답을 찾길 바라던 분야에 대해 부모가 조언을 한다면 그것은 '잔소리'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다른 예로는 제가 길거리를 걷다가 얼떨결에 근처 헬스장에서 세일을 하고 있다는 전단지를 받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헬스장에서는 자신들의 서비스가 아주 저렴하다는 생각을 제게 전달하고 싶었겠지만, 제가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에 관심이 없다면 그 전단지는 그저 제게 쓰레기로 느껴질 뿐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들에게 아무리 값비싸고 좋은 명품이라 할지라도 제가 그것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고, 아무리 좋은 명언과 지혜도 제게 그 내용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그것은 제게 와 닿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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