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바 May 21. 2020

우리는 잘 모르는 것에 대해 군중과 '동조'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허브의 선택은 단순히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파한다는 것 이상의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허브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 또는 시스템은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파하기 위한 더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허브의 선택을 따르는 것일까요?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건, 무엇을 선택하건 나는 나만의 생각과 선택을 따르면 되는 것인데 우리는 왜 이렇게 남들의 생각과 선택을 궁금하게 여길까요?


여기에는 우리가 속한 사회 구성원들이 점차 동일한 생각으로 모이는 동조(Conformity)와 수렴(Convergence) 현상이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동조' 현상에 대해 설명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잘 모르는 분야의 장비를 하나 장만해야 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저는 해당 분야에 아는 것도 적고, 직접적으로 조언해줄 사람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제가 적당한 장비를 고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 무엇일까요?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방법도 있겠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는 가장 잘 팔리는 장비, 또는 매장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전시된 적당한 가격의 물건을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을 동조 현상이라고 합니다.


동조 현상은 1936년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의 자동운동(autokinetic) 실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동운동이란 사람이 완전히 어두운 공간 속에서 정지해있는 작은 점을 보면 실제로는 그 점이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 점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말합니다. 이 자동운동을 이용한 실험을 위해 셰리프는 우선 참가자들을 개별적으로 분리시켜 각자가 인식하는 점의 움직임 범위를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 이번에는 참가자들을 다 같이 모아놓고 점이 움직인 범위를 표시하여 서로의 의견이 공유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참가자들을 분리하여 한번 더 각자 점이 움직인 범위를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처음에는 점이 움직인 범위에 대해 의견이 다르던 사람들이 다 같이 논의를 하고 나자 움직임에 대한 의견이 점차 유사해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이러한 셰리프의 실험 결과가 정답이 확실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물어봤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고 반감을 가졌습니다. 애쉬는 정답이 분명하고 판단하기 쉬운 경우에는 위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의 선이 그려져 있는 그림을 보여준 후, 길이가 다른 선분 세 개가 그려진 다른 카드를 보여주고, 처음 보여준 선과 동일한 길이를 가진 선분이 어떤 것인지 맞추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실험 참가자는 먼저 혼자 있는 상황에서 답을 말하고 난 후, 다음에는 자신을 제외한 6명이 함께 모여있는 상태에서 공개적으로 답을 말하도록 했습니다. 다만, 이때는 실험 참가자에 앞서 나머지 실험 참가자로 위장한 연기자 6명이 실험 참가자가 답을 말하기 전에 고의적으로 '동일한 오답'을 말하도록 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 하나인 애쉬의 선분 실험


실험 결과, 혼자 있는 상황에서는 정답률이 99%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른 6명의 사람들이 오답을 말하는 상황에서 실험 참가자의 정답률은 63%로 뚝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잘못된 답을 말하자 무려 36%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바꾼 것입니다.


이후 기술이 발달하여 인간이 MRI를 이용하여 뇌의 반응 부위를 관찰할 수 있게 되자 인지과학자들은 우리의 뇌가 이 같은 경우에 어떻게 반응을 하는 것인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2005년 애틀랜타 에머리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Gregory Burns)가 이끄는 연구진은 솔로몬 애쉬의 실험을 변형하여 실험 참가자들에게 겉보기에 달라 보이는 다른 입체 도형 두 가지를 보여준 후 그 도형들이 서로 다른지 아니면 같은 도형을 각도만 다르게 한 것인지 맞춰보도록 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이때, 애쉬의 실험처럼 번스의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에 앞서 다른 배우들을 섞어 때때로 틀린 답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배우들이 틀리게 답을 한 경우에는 지원자들의 40% 정도가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실험 참가자들이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할 때는 우리의 뇌에서 주로 감정과 관련된 곳의 반응이 크게 일어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때는 공간 지각에 관련된 두정엽중간고랑(intraparietal sulcus)의 반응이 크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수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때는 감정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때는 스스로 물체 인지를 수정하여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더라도 다수의 의견이 다르다면 그들의 의견에 맞춰 바라보도록 우리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찰 없이 자동으로 다수의 사람을 모방하는 현상을 사회학에서는 '정보 쏠림 또는 정보 폭포(information cascade)'라고도 합니다.


솔로몬 애쉬의 실험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깨버리며 심리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까지 이어지면서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권위에 의해 얼마든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든 상황, 모든 의견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의견을 무작정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셰리프와 애쉬의 실험을 통해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1) 정답을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다양한 타인의 생각 중 하나가 내 생각에 절대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2) 정답을 확실히 알 수 있는 경우에도 집단의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결국 내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뇌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풍족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지를 계획하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뇌는 다양한 전략들을 수용하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큰 영향을 발휘하는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내게 유용한 교훈을 빌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하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며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거의 반 자동적이어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우리가 TV 속 드라마에 열광하거나 소설에 몰두하는 것도 결국 우리가 그 이야기 속에 우리 자신을 투영시켜 시뮬레이션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고, 그 즐거움은 우리의 선조 중에 어떤 선조는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는 조상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이전 17화 결국 허브의 선택이 성공을 좌우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