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어진 단어인 핀테크(FinTech)는 Finance와 Technology의 합성어로써, 금융회사가 주체가 되어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 서비스를 IT 기술을 이용해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테크핀(TechFin)은 단어의 위치가 바뀐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회사가 아닌 기존 IT기업들이 주체가 되어 자신들의 IT 서비스에 고객들에게 필요한 금융 서비스를 구현하여 제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사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굴지의 IT기업들이 이미 지급결제 서비스(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등)로 소매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카카오는 인터넷 전문은행까지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테크핀이라는 단어의 소개는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새삼스러운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와 테크핀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는 것은 IT기업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것에 대해 규제와 기준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국회와 정부가 IT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기준을 세우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면,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하나씩 기준을 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목해봐야 될 것은 주요 지급결제 서비스에 소액여신(대출) 기능이 추가되는 시점입니다. 현재 금융당국은 지급결제 서비스에 신용카드처럼 후불 결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령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급결제 서비스를 통해 후불 결제나 할부 결제를 하려면 반드시 신용카드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했지만, 이처럼 지급결제 서비스에 소액여신 부여가 가능해진다면 은행 계좌에 잔액이 없어도, 신용카드가 없어도 바로 결제를 하고 나중에 돈을 입금하는 쇼핑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IT기업들이 기존 금융회사에 종속적인 환경에서 벗어나는 한편,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도 선택지가 좀 더 많아지면서, 수수료를 통한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습니다.
또한, IT기업들은 금융회사들에 비해 고객 범위가 더 넓고, 국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더 다양한 서비스가 있으며, 기술력 측면에서도 앞서 있으므로 금융회사가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파급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당장 미국의 사례만 보더라도 페이스북이 자체 암호화폐인 '리브라'를 개발하여 유통시키겠다고 하자 달러의 패권까지 흔들릴 것이라고 평가가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비교적 수평적 관계를 유지했던 IT 업종과 금융 업종의 관계가 단숨에 IT업종으로 쏠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까지도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뱅킹을 믿지 못하고 직접 은행이나 증권사 지점을 방문하여 사람에게 맡기는 것을 더 선호하는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변화에 호응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당장 큰 타격은 은행보다는 카드사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스마트뱅킹~ 스마트뱅킹~ 노래를 불러도 은행의 주 수입원은 지점을 방문하는 고액 자산가들과 여신 거래 기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존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는 신용관리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점은 IT기업들의 약점이자 위기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고액 신용거래가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갑작스러운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소액 신용거래만으로도 IT기업들이 휘청일 수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를 강타했던 '카드대란' 당시 발생한 신용불량자가 200만 명이 넘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될 것입니다. 이 당시 국민, 우리 등 은행계 카드사들은 모회사인 은행과 합병하여 간신히 부도 위기를 피했고, LG카드는 공적자금 지원을 받아 신한금융지주에 매각되었으며, 외환카드의 부실로 외환은행은 론스타로 매각되기도 했습니다. "에이 설마 그럴 일이 있겠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동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주의를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