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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Jun 10. 2021

11월의 기록, 이중성으로 점철된

지금부터의 기록은, 그 순간 나이며, 순간의 영감이며, 

순간의 고통이며, 순간의 희열과 눈물이며, 순간의 삶이다.

더 처절하게, 더 깊게 기록하고, 기억했다. 

나의 차가움과 나의 온기를 한 곳에 담아본다.


7일에 한 번, 나는 그날만을 기다렸다.


2019년 11월 2일

인생을 때때로 깨달음의 순간들을 

아주 찰나에 선물하곤 합니다.


그 잠깐의 순간으로 인해

확실해진 것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해요.

분명 누군가는 유별나다고 할지도 모르고,

마음에 안 든다고 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나는 내가,

그래도 나는 그대가,

그래도 나는 우리가 좋습니다.


2019년 11월 4일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 가득한 하늘 사이로 제법 차가워진 바람이 불어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일상애 젖어들었고 당연한 듯 창문을 닫았다.

비가 조금이라도 들이치면 큰일이니까.


"신뢰가 있는 관계에만 반응하는 나이가 된 걸 지도 몰라"

조금은 가벼워져도 된다는 그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마음고 생각을 내려놓고

크게 한 번 숨을 몰아 쉬었다.


소소하게 이야기하고 일상을 털어놓으며,

스치듯 인사를 하고,

때로는 가볍게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음이 아쉬운 건 아주 잠깐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린 거다.

투둑. 투둑.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좋아하는 계절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조금은 즐겨도 괜찮을 것 같다.


2019년 11월 6일

언제부터 인가 만들어진

보기 좋은, 적당히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그런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


그런 진짜 내가 아니잖아.

무겁게 들고 있는 가면이잖아.

내가 어떤 모습을 보이든 그저 있는 그대로는 인정해주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은 하나도 살아봐도 될까.

충분하지 않을까.


2019년 11월 7일 

나를 붙잡아요.

흔들리다 쓰러지지 않게.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게.

존재의 연약함을 도 다른 존재로 채우기 않도록.

마음에 상처입지 않게

나를 일으켜 세워요.

더 이상 불안에 떨며 아프지 않도록.


2019년 11월 8일

다들 먼저 도망갔으니까

이제는 내가 먼저 도망할게요.


2019년 11월 14일

아주 모순적이게도

사람들에게 '치유'라는 이름의 

강의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지는 못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나는 상담실로 달려갔다.


눈물을 참으며 나의 이야기를 이어가다

결국 참아내지 못하고 울었다.


누군가가 풀어내는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정작 나의 이야기는 품어내지 못했다.


우는 법을 잊은 것 같다.

너무나도 긴 밤이라.


나의 세상을 빛을 잃었다.

빛이 죽은 건지, 애초에 없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강해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2019년 11월 15일

'나' 인척 하는 외계인이 몸 안에 들어있다.

분명 같은 일상인데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고 부대낀다.


그래, 나는 단 한 번도 삶이 쉬운 적이 없었다.

가벼운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모른다.

아무리 티를 내도 모른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생각보다 더 관심이 없다.

나조차도 그렇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래서 따뜻함이 없고 사랑이 없다. 


따뜻함과 사랑이라고 위장한 것들이 있으뿐.

속을 파보면 '진짜'는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외계인 인척 하고 살기로 했다. 

따라 웃고 따라 울다 보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살다 보면 그 속에 섞인다.

부대끼고 불편해도 살아진다.


왜냐하면 살지 않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엔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18일

자꾸만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된다. 

그래서 나의 생에게 미안해졌다.

내 앞에 놓인 이 생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분명 예쁘게 가꿔줘야 하는데, 

그래야 꽃을 피울 텐데 

어떻게 물을 주고 햇빛을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바람은 태풍이 되어 내 주위의 나무를 모조리 쓰러트렸고, 

광활한 대지에 이제 막 봉오리를 맺은 꽃들은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2019년 11월 19일

우린 따뜻함과 사랑과 진심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난 분명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2019년 11월 19일

어느 날엔가 문득 그네가 타고 싶어 졌다.

무작정 집 앞 놀이터로 나가 그네를 탔다.

낮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던 이곳도 찬바람 부는 저녁이 되니 

찾아주는 이 없는 쓸쓸한 곳에 지나지 않았다.


힘차게 발을 굴렀다.

높이 더 높이 하늘에 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9년 11월 20일

시간의 공백을 어떻게든 메꾸고 싶은데

어떤 방식으로 메꿔야 하는지 길을 잃었다.


고민할수록 그 공백은 더 커졌고,

가장 큰 두려움을 하고 싶은 게 사라졌다는 절망감.

꿈이 없어졌다는 절망감.


아무리 아등바등 발버둥 쳐도

끝없이 무기력에 잡아먹히는 고통


2019년 11월 21일

사실 난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 대단하지 않을 걸요.


누군가의 박수와 누군가의 인정에 

그렇게 되고 싶었을 뿐이에요.


사랑. 사랑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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