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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Apr 13. 2021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나요?

어떤 정신으로 이곳에 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래 , 난 아주 절박했다. 몇 시간을 울다 지쳐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SOS를 쳤다. 눈물로 흐려지는 앞을 애써 닦으며 그렇게 겨우겨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갔다.  살려달라는 요청이었다. 선생님으로부터 놀랏듯 연락이 왔다. 4년 만에 다시 받는 상담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나는 참 많이 바뀌었다. 지금 내가 이 공간에 있는 이유는 위로 따위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하는 발악이었다. 이 무기력과 우울과 불안과 초조함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간절함이다.


나는 나의 무너짐이 너무나 낯설다. 그동안의 기억과는 차원이 다른 어둠이라는 것을 깊게 느낀다. 아무런 힘이 나질 않았다. 그것이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다. 자꾸만 무서운 상상을 했다. 요즘 나는 내가 무섭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작은 일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나를 발견한다. 집에서 무작정 나와 카페로 향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지난 일주일간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으로 상담이 시작되었다. 아무렇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는, 나의 무기력이 더 커졌다는 뜻이다. 나의 아픔과 누군가의 아픔이 더 이상 마음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에게 미안한 한 주였다.


"지금은  류화씨의 힘듦이 너무나도 커서 누군가의 아픔을 받아줄 공간이 없는 거예요.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동안 버텨왔던 거예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거예요. 조금은 편하게 내려놓아도 돼요."

"맞아요. 힘이 안 나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족쇄가 되어 나를 묶어왔다. 그리고 악순환이 이어졌다.


"혹시,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나요?"

"죽음. 죽음이란 뭘까요.........죽음을 생각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적은 많아요. 그냥 연기처럼 증발하고 싶다는 생각. 그런 거 있잖아요. 몸과 마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맺어온 모든 관계들과 환경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 죽고 싶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예요. 숨을 끊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사라지고 싶어요.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으로. 사라진다는 표현 말고 더 어울리는게 있을까요. 조금 약해요... 생각해보니 죽음이라면 죽음일 수도 있겠네요."


그 이후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냈는데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나는 계속 울고 있었다는 것. 참으려 했지만 참아지지 않았다.


내가 내뱉는 모든 것들은 이미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수차례 스스로 생각하고 확인한, 그런 나의 어려움과 결핍이었다. 다시 한번 입 밖으로 확인했을 뿐. 


심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상담을 마치고 뒷목부터 허리까지 끊어질 듯 아파왔다. 두통이 왔다. 가방에서 진통제 한 알을 꺼내 집어삼켰다. 집 가는 길 내내 잠이 쏟아졌다. 깊은 잠에 들고 싶었다. 축 져지는 몸을 이끌고 일을 했다. 빨리 저녁이 왔으면 했다. 자고 싶다. 아무 이유 없이 잠이 쏟아진다. 이유 없이 몸이 아파왔다.


나는, 어떤 힘도 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말했다. 죽음을 택할 용기가 없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선생님은 다르게 해석했다. 이런 삶 가운데서도 살아가는 것을 택하는 것 자체가 정말 큰 용기라고. 그러니 지금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거라고. 무너지는 것도 용기라고. 괜찮다고. 잠시 그래도 된다고. 


나는 요즘 죽음을 향한 애착이 강해질수록, 삶에 대한 애착 또한 강해지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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