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소비에도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해 5월 오랜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이 시국에 가는 게 맞나 조심 스러웠지만, 최종 원고를 정리하기 전에 제주도에 계시는 스승님께 조 언을 구하러 잠시 찾아뵙기로 했다. 머무는 내내 혼자 지내다가 하루는 정원이 7명 남짓 되는 작고 조용한 게스트 하우스를 찾았다. 제주도 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자 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공간에서는 여행자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많 은 사람들이 쉽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곤 한다. 내가 묵은 서귀포시 대정읍의 한적한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매일 밤 소소한 이야기의 장이 펼쳐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음과 동시에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진솔한 대화들이 여기저기에서 시작되었다. 오랜 만에 주고받는 삶의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니, 우리 모두 꽤나 팍팍한 삶들을 살고 있었구나, 사회 분위기가 정말 많이 가라앉아 있구나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저마다의 아픔과 고민을 끌어안고 모인 사람들은 이 곳에서도 약간의 가면을 쓰지만, 조금은 덜 무겁다. 꺼내기 힘든 깊은 이야기마저 시시콜콜하게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이 공간의 가장 큰 매력 이 아닐까 싶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아픔과 행복을 그날 하루만큼은 기꺼이 함께 짊어지기를 자처한다. 여행이라는 공감대 하나가 서로를 이렇게도 강하게 엮는다.
약간은 취기가 오른 얼굴로 옆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고민이 있어요. 좋은 회사에 들어갔는데, 그만둘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온 고민 상담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그의 시무룩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뭐 때문에 고민하는데요?”
“남들이 다 가고 싶어 하는 회사라 처음엔 좋다고 들어갔는데, 지금 같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시국에 이렇게 회사에만 시간을 쏟는 게 맞나 싶어요… 다니면 다닐수록 돈 때문에 다닌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는 그 말을 하고 테이블에 쿵 하고 엎어져 잠이 들었다. 이런 게 취중 진담이구나 싶었다. 물론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생각이고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미래에 대한 고민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는 그 고민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가는 분 에 넘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타박을 받을 게 분명했을 것이다. 위기가 무르익자 대화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이번 여행에는 유독 생각지 못했던 시간의 여유가 생겨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등장이 우리의 일상생활에는 물론 사고방식, 행동 양식 전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코로나 에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폐업하거나 무급 휴직자가 된 사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안정적인 생활의 기초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 빠졌다.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되고 나니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부터 앞으로 주어질 시간 또한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유로 제주도를 찾은 이들 역시 갑작스레 주 어진 시간 여유에 즐거움과 동시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불안은 자연스레 삶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삶에 대해 고민하되, 거기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감정과 사실을 혼동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쇼핑하듯 인생 소비하지 않기
지난밤에 갑자기 기절하듯 쓰러진 그는 숙취로 꽤나 고생을 했는지 다음 날, 오늘 하루는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제주도에 와서 느낀 건데 그동안 왜 이런 시간을 진작 갖 지 못했을까요. 이제 새로운 곳에 인생을 좀 써볼까 봐요”라는 말을 툭 던졌다. 그리고 이번 2주간의 여행이 자신의 삶을 많이 바꿔놓을 것 같다고 했다. 여행 중에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했던가. 그가 다시 바쁜 현실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의 말들을 기억조차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누구나 한번쯤 몇 날 며칠을 심사숙고해서 쇼핑을 했는데 정작 물건을 받아보니 전혀 기대에 못 미쳐서 실망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이 인생에 그런 실망감을 안고 살아가는 상태가 아닐 까 싶다. 더욱 슬픈 사실은 쇼핑은 교환과 반품이 되지만 인생은 그마 저도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소비 및 지출 형태와 유형을 ‘소비 패턴’이라고 한다. 패턴이라는 것은 일정한 형태나 규칙이 이미 자리 잡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번 잘못 생긴 소비 패턴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인생에도 소비 패턴이 있다. 인생의 소비 패턴은 모두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자본을 어떤 패턴으로 소비하고 있는지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인생을 소비한다.
각자의 인생에서 자연스럽게 또는 익숙하게 소비하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는 회사에 소비하고, 누군가는 대인관계에 소비하고, 자기계발이나 여가 시간에 소비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자본과는 달리 인생이라는 자본은 소비할수록 사라지며 다시 채워지거나 충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보다 효율적으로 소비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인생 소비 패턴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든 소비하는 행위 자체는 굉장히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며, 그 에너지 분배를 잘하는 사람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나의 인생이 지금 어디에 소비되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일시 정지’가 필요하다. 계속해서 소비하기만 한다면 패턴을 알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겪는, 의도하지 않은 이 여유가 오히려 반갑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세상은 떠들썩하고 언제쯤 이 사태가 나아질지도 알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나와 세상 사이에 공백이 생긴 지금, 한 번쯤 지난 생을 돌아보며 인생을 어디에 물 쓰듯 쓰고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어떨까. 혹시나 무리하게 인생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잘못된 곳에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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