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뭘까?"
삶이란 치열하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세상은 나를 밀어낸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매일을 버티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 속에서 나도 모르게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가끔은 내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때, 마음속에서 불쑥 묻는다. "나는 왜 일하고 있는 걸까?” 어떤 질문들은 너무 쉽게 답할 수 없어서 마음속에서만 맴돈다. 복잡하고 피곤해 ‘굳이’ 질문을 해야 할까라는 마음에 외면하기도 한다.
일을 하는 이유를 물을 때마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일이 단지 돈벌이 수단에 그칠 때, 우리의 마음은 점차 무거워지고 삶은 고단해진다. 우리는 모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그 의미가 있어야만 매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시대의 청년들은, 나 역시 그중 한 명으로서, 일에서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너무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 정말 의미 있는 일을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2030대 청년들의 상당수가 "하는 일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한다."고 말하는 조사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고민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된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존'과 '성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느 순간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조차 두려워 한다.
물론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돈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서, 일은 자연스럽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난 그냥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하는 것 같아. 이 일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그리고 그 의미라는게 꼭 중요한것 같지도 않아.” 친구의 말은 내 안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애써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마음을 건드렸다. 모두가 한 번쯤 느껴본 감정이 아닐까? 내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한지 말이다.
그러나 만약 일을 통해 내가 얻는 것이 단순한 생존의 수단일 뿐이라면,
어쩌면 그것이 나를 점점 더 공허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을 결정짓는 질문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주고 있는가? 둘째, 나는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얻고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때때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드러낸다. 일이 나에게 의미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결국 나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만든다.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깨닫는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의 하루가 지쳐가는 과정이 아닌,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그 사실을 우리는 자주 놓치고 만다. 역할에, 혹은 어떤 사회적 기준과 틀에 쉽게 잡아먹힌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내가 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다르지 않다. 한나 아렌트는 일을 ‘세상에 남기는 지속적인 흔적’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마따라 우리가 조금더 가치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결국에는 나의 일, 나의 시간, 나의 모든 노력은 단지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기 위한 의미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일을 해치워야하는 과업으로만 여긴다. 결국 그 끝에 남는 것은 피로뿐이고 어떤 성취감이나 내 삶에 변화를 주는 일이 못되는 것이다.
그때 부터 우리는 ‘일’이 아닌
‘노동’을 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노동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노동(labor)은 라틴어 ‘laborare’에서 왔으며, 그 의미는 ‘고통스럽게 일하다’이다. 노동이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것일 수 있다.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 혹은 의무감에서 비롯된 반복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일(work)은 다르다. 고대 영어 ‘weorc’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일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자, 나의 본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창조적 행위여야 한다.
이 두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노동이 아닌 일을 통해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일을 하며 기쁨이나 희열보다 고통과 불만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면 일에 대한 관점을 어떻게 바라보고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는 신호이다.
혹시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것은 아닌지?
이 시대에 청년들은 점점 일에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현실은 냉혹하고, 꿈은 사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욕구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청년들의 60% 이상이 일을 통해 아무런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숫자 뒤에 숨겨진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갔다. 이 지표는 단순히 세상에 대한 이들의 불평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크고 깊은,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내면의 갈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행복은 의미에서 시작된다.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삶의 활력을 잃는다. 하루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이라면, 그것의 ‘의미’는 더욱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사이먼 사이넥(Simon Sinek)은 그의 저서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에서 "사람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왜’ 그 일을 하는지다. ”라고 말했다. 그 이유, 곧 자신만의 동기와 의미를 를 발견하지 못하면, 우리는 점차 자신을 잃어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결과인 셈이다.
오늘도 하루하루의 일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는 순간, 일은 더 이상 고된 노동이 아닌, 나의 삶을 완성하는 한 부분이 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서 일이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에 머무는 것이 아닌,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질문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나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가?"
"나는 이 일을 통해 더 나은 내가 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