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정말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진다.”
우리는 모두 한번쯤운 가슴 뛰는 일을 꿈꿨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하루가 기대되고, 그 하루를 내가 사랑하는 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바람과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순간을 경험하는 그런 일 말이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을 찾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상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결국 그 ‘가슴 뛰는 일’은 손에 닿을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되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꿈은 점점 희미해진다.
사실 대부분, 아침에 눈을 떠 출근을 준비할 때, 그 일이 나를 설레게 하기보다는 의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가슴 뛰는 일이란 존재하는 걸까?”
이 질문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해본 질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가슴 뛰는 일'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작은 기쁨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거대한 성취만을 꿈꾸며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마치 일상을 살면서 내일이라는 희망만을 바라보며 현재의 순간 순간을 그냥 지나치는것과 비슷하다.
가슴 뛰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거대한 성취나 커다란 목표에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일은 이미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살아가는 현재 지금 이순간에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우리가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을 동사가 아닌 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명사와 동사의 차이는, 명사는 고정된 상태로, 하나의 결과물을 나타낸다. 우리가 목표를 명사로 설정하면, 그 목표에 도달한 순간 끝이 나고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을 수 있다. 명사적 관점에서 일과 삶을 바라보면 우리는 늘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의사가 되는 것, 직장인이 되는 것, 혹은 성공하는 것 모두 결과로 정의될 때는 고정된 상태에 머물러버린다. 삶을 명사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완성되지 않는 여정이 된다. 목표에 다가가더라도 우리는 항상 더 나은 결과를 갈망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기 쉽다
반면에 동사는 행위와 과정을 의미한다. 동사로 삶을 바라보면, 그 일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진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기쁨과 의미를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그 결과에 도달한 순간 완성된 꿈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을 치유하고 싶다"라고 말하면, 그 꿈은 단지 의사라는 직업을 넘어서서 사람을 돕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로 확장된다.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작은 대화에서 의미를 찾고,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가는 기쁨을 우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이상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일 속에서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동사적 관점은 끊임없는 움직임과 변화를 강조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성취과 가치, 그리고 의미를 찾아 나간다.
그래서 삶이란 명사의 관점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동사의 관점에서만 경험할 수있는 훨씬 더 크고 다양한, 풍요로움들이 존재한다.
나는 한때 연극 배우를 꿈꿨다. 주연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내가 꿈꾸던 가슴 뛰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주연이 아닌 작은 배역을 맡거나 무대 뒤에서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지금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주연 배우가 되어야만 그 일이 가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무대 위에 서는 과정 자체에서 이미 나는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배역에 몰입하고 대사를 외우며 감정을 담아내는 순간들과 동료들과 밤을 새워가며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던 시간들 속에서 이미 나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 순간들은 단지 목표를 향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순간들이었고, 내가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할 기회였다. 모든 과정에 작은 기쁨을 온전히 그리고 충만히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결국 가슴 뛰는 일은 어떻게 그 일을 바라보고 경험하는가에 달려있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이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은 계속해서 흐르고, 우리도 그 안에서 계속해서 움직인다. 삶은 단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ing, 즉 행위와 의지, 그리고 움직임 속에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새롭게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가슴 뛰는 일을 한다는 것은 가슴 뛰는 삶을 사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 속에서 우리는 행동하고, 의지하고, 움직이며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증명해낸다.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곧 진정으로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믿는다.
청년 세대에게 이 메시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결과만을 추구하는 일에 쉽게 매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꿈을 단지 하나의 명사, 목표와 결과로만 정의하게 되면 삶을 향한 사랑보다는 불안과 원망으로 일상을 가득채우게 될지도 모른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을 위해 능동적으로 돌보는 활동이다.” 프롬의 말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나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슴 뛰는 삶을 찾는 것도 마치 사랑처럼 능동적인 참여와 성장이 요구된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을 돌보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가슴 뛰는 일을 '결과'로만 바라본다면, 그 일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롬이 말했듯이, 사랑이 능동적인 행위인 것처럼, 가슴 뛰는 삶도 매일의 순간 속에서 능동적으로 찾아야 한다. 결국 가슴 뛰는 삶을 창조하는 일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작은 순간들 속에서 시작된다. 주연이 아니어도, 무대를 준비하는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던 것처럼.
그래서 동사적 삶, 즉 끊임없이 행동하고, 성장하고, 의미를 만들어가는 삶은, 어떤 직업이나 역할에 얽매이지 않는다. 물론 때때로 삶이 불확실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작은 성취를 발견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미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완벽한 결과에 도달하지 않아도,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삶에 존재하는 작은 기쁨과 성취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아름답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슴 뛰는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그것이 곧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니까.
*오늘의 질문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