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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14. 2024

9. 실존적 공허

"당신은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고 있는가?"

어느 날, 문득 나를 둘러싼 세상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스며드는 묘한 공허함.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감정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나를 감싼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순간에도, 문득 혼자 남아있음을 느끼는 그 찰나에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내 삶일까? 나는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우리는 살다가 문득 이런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공허함이 어느새 가슴을 채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도, 홀로 남는 시간에도,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삶인지 스스로 묻곤 한다. 그러나 그 답은 늘 불분명하다. 청춘의 시기인 20대와 30대는 특히 그렇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좋은 학교와 안정된 직장을 목표로 살아왔다. 사회는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고, 우리는 그 말을 따랐다. 그러나 목표를 이룬 후에도 가슴속에 남는 허전함을 피할 수 없다. 왜일까? 왜 이미 성취했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공허함을 느끼는 걸까?


공허함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고독이 자리한다. 그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질문과 마주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물음으로 이어진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인간은 한계 상황에 직면했을 때 실존적 문제를 자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한계 상황'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불안, 고통, 그리고 삶의 불확실함 등을 말한다. 이런 순간들에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은 단순한 외로움이나 우울함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한 데서 오는 불안일 수 있다. 야스퍼스가 강조한 것은 바로 그 '의미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이 공허함은 결국 우리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하여 빅터 프랭클 박사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힘의 원천"이라고 했다. 프랭클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심지어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때 인간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경험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생존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삶이 주는 고통이나 시련 속에서도 우리는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그 의미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이 공허함은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감정이다. 목표를 이뤘지만 그 성취가 내면의 열망을 채우지 못할 때, 우리는 더 깊은 공허를 경험한다. 그 공허함은 때로 나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타인의 삶과 비교하며 나 자신을 작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공허함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한 의미를 찾을 기회다.


삶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거대한 성공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하지만, 의미는 오히려 우리 삶의 작은 순간 속에서 발견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따스한 시간, 스스로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 시간들이 그 답을 준다. 빅터 프랭클은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몇 해 전, 나 역시 비슷한 공허함을 느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사회적 성취와 안정된 삶.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언가 빠져나가는 듯한 허전함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바쁘게 일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워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내 삶이 내가 아닌, 타인의 기대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그 공허함은 천천히 내 일상을 갉아먹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웃고 있어도, 혼자 남을 때면 그 고독이 나를 짓눌렀다. 나는 더 이상 이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멈추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도, 계획도 없이 단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을 떠난 첫날, 나는 이상한 해방감을 느꼈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을 마주하며, 그동안 얽매여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고요한 산속에서, 해변에서 혼자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잊고 있던 내 자신을 조금씩 되찾아갔다. 어느 날, 해변에 앉아 조용히 파도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졌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한동안 그 질문에 사로잡혔다. 그동안 나는 목표와 성공만을 쫓아왔다. 그게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나는 나의 진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남들의 기준에 맞춘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만의 의미를 찾아가기로 했다.


물론, 여행이 정답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공허함을 마주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여행을 통해 찾아왔지만, 꼭 여행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다.


실존적 공허함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 공허함 속에서 우리는 더 나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공허함은 자신을 돌아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기회를 준다.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속에서 피어난다.


오늘의 질문:
 "당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지금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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