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그 근원적인 물음에 대하여"
계절의 변화가 온몸을 아리듯 스며든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나무의 고요함을, 바라본다. 차가운 바람 속, 숨겨진 생명의 떨림을 바라본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그리고 여전히 세상은 곳곳에서 ‘나다움’을 외친다.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이제 너무나 흔한 문구가 되어버렸다. 마치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쉽게 말해진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을 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랑을 찾는 일이 과연 얼마나 쉬운 일일까? 우리는 정말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가지고 있을까?
가을 바람이 나뭇잎을 떨구듯, 우리도 때로는 스스로를 떨궈내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나'라는 존재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에 불과할지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니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습으로 말이다. 한겨울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을 감싸는 나무처럼, 우리는 외부의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가면을 쓴다. 그 가면 뒤에 진정한 나를 숨기고 있지는 않을까? 그것은 내가 숨기고 싶었던 실패일수도 있고 혹은 두려움, 불안, 그리고 나의 연약함일 수도 있다. 그 연약함은 오랫동안 굳게 잠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그 가면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우리의 본질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은 마치 눈 덮인 숲을 헤쳐 나가는 일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미로에 가깝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늘게 비치는 햇살처럼, 때로는 희미한 빛조차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때론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을 만큼 힘겹다. 내면의 소리로부터 도망치듯 끝없이 달려가지만, 어느 순간 발끝에 남은 길조차 보이지 않기도 한다. 마치 눈발이 사방을 가로막을 때처럼.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에서 자꾸 눈을 돌린다. 그만큼 나의 가장 깊은 상처, 숨겨왔던 어둠, 내면의 연약함과 대면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나’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보다 오래전에 그 답을 알고 있었다. 나무는 자신을 감추지 않는다. 나무는 때가 되면 잎을 떨구고, 다시 새순을 틔운다. 겨울에 잎을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그 나무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그 뼈대가 드러나는 순간, 나무는 가장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봄의 푸른 잎사귀만을 나무라 여기지만, 본질은 그 속살에 있다. 나도 그러하리라. 가면을 쓰고 타인의 기대 속에 나를 감춘 채 살아가지만, 그 가면을 벗어던진 날이야말로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진정한 순간일 것이다. 마치 한겨울에 모든 잎을 떨군 나무처럼, 가면을 벗고 난 뒤의 나의 모습이 비로소 나일지도 모른다.
바람은 다시 불어오고, 잎은 땅으로 흩날린다. 문득 한 여자의 꿈이 떠오른다. 그녀는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었다. 신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녀는 대답했다. “저는 000입니다.” 하지만 신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나는 네 이름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그녀는 당황해하며 다시 답했다. “저는◻︎◻︎딸이자, 00의 엄마이며, 제가 한 일은….” 그러나 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는 네 역할이나 직업을 묻지 않았다. 네가 이뤄낸 성과도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여자는 혼란에 빠졌다. 자신이 생각했던 모든 정의와 설명이 더 이상 답이 되지 않는 그 질문 앞에서, 그녀는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고민했다. 그녀는 깨어났다.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속의 질문은 그녀의 마음 깊은 곳을 흔들어 놓았다. "나는 누구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내세웠던 이름, 직업, 성과들이 진정한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보다 세상이 기대한 모습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언제였던가, 나 역시 깊은 심연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만났다. 삶은 아무 문제 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나의 영혼은 절망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희망 한 줌 내어주지 않는듯한 삶을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앞에 놓인 성취들과 외부의 시선들이 아무 의미 없는 허상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마음 안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올라온 순간 삶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너무 고통스러웠고, 억누를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었다. 세상에 떠나가라 울고 또 울었다.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던 그 가면을 끌어 안고 울었다.
한 겹 한겹 나의 껍데기를 벗어내던 순간이 떠오른다. 손에 꽉 쥐고 놓지 못하던 ‘가면’을 내려놓던 날 조금씩 나를 만났다. 마치 오랜 시간 잊혔던 색채가 서서히 되돌아오듯, 나의 삶에 희미하게나마 작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빛은 처음엔 약했지만, 분명 내 안의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외면해온 본질적인 나의 빛이었다. 그러나 그 빛이 점점 더 밝아질 때, 나는 다시금 나에게 물었다. 이 빛은 나의 진정한 모습일까? 아니면 또 다른 가면일까? 되려 무서워졌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은 어둠과 빛의 사이, 그 경계를 넘나드는 과정이다. 확신과 혼란을 수없이 반복한다. 빛만 존재하는 것은 진정한 빛이라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빛은 어둠과 함께할 때 그로서 존재한다. 우리는 종종 빛만을 쫓다 그 빛 속에 감춰진 자신의 그림자를 놓치곤 한다. 너무 밝아 어둠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본질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그 경계에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역할이나 성과로 자신을 정의하려 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더 빠르게, 더 멀리 달릴 것을 요구한다. 성공을 향해, 목표를 향해, 끝없는 경쟁 속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성공의 꼭대기에 올라서야만 비로소 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말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느 순간 길을 잃고, 내가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다. 결국 그 끝에서 껍데기에 불과한 자신을 마주하곤 한다. 우리는 본질과 무관한 그 껍데기 속에서 공허를 느낀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다. 인간의 존재가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이 정말 나의 길인가?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기준 속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내 영혼이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인가?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진정 내가 원했던 자리인지, 내가 걸어온 길이 정말 나의 길이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자기다움을 찾을 수 없다.
자기다움이란 단순히 나의 성격이나 기질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나의 영혼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한 빛, 다른 말로 ‘본질’을 발견하는 일이다. 본질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곧, 내가 나로서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이자, 내가 아닌 다른 것일 수 없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의미한다. 본질은 누군가가 나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나만의 빛이다. 본질은 꾸며내거나 연출할 수 없는,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담고 있다. 그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현존하게 된다.
자기다움을 찾는 길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야 하는 길이다. 진정한 나를 만나는 길은 결코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그 길은 마치 천천히 피어나는 꽃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내면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마치 봄의 새싹이 속도를 재촉하지 않듯이.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 멈추어 서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내 영혼이 바라는 모습은 어떤 것인지 말이다.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언제나 겉모습만을 좇아 달리게 될 것이다. 그 가면이 조여오는 숨통에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중임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잠시 멈추어 나를 찾아가는 시간이 가장 의미 있다고 믿는다. 설령 그 여정 끝에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깊고 깊은 숲속을 홀로 걷는 듯한 외로움이 덮쳐올지라도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 여정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진정한 본질은 마치 겨울의 침묵을 깨고 생명이 움트는 것과 같이, 고요하고도 확실하게 우리 안에서 깨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곳곳에서 ‘나다움’을 외친다.
당신은 그 외침 속에서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에 답을 요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