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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23. 2024

11. 사랑을 묻다, 나를 비추다

"지금 당신은 무엇을 위해 투쟁하고 있나요?"

오늘도 사랑은 아득히 멀게만 느껴진다. 손끝에 닿을 듯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가왔다가 스르르 멀어지는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나는 늘 홀로 남는다. 어쩌면 내 마음이 사랑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사랑이 내 앞에 와도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 내 안의 무엇이 자꾸 사랑을 밀어내는 걸까. 혹시,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일까?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떠나가는 사랑을 바라보며 던지는 질문들.


삶에 대한 사랑조차 여전히 내 안에는 짙은 물음표로 남아 있다.


한때는 모든 것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세상은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처럼 보였고, 사랑도 내 것인 양 당연하게 여겨졌다. 두려울 것이 없었던 시절, 세상은 내 것이었고, 내게 닿는 모든 감정들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한순간에 무너졌다. 세상의 무대 위에서 나를 주인공이라 생각했던 내가 무너졌을 때, 사랑도 함께 사라졌다.


사랑, 인정, 그리고 사랑.

단 한 번이라도 온전히 나의 것이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그것이 사랑이었을까.


그토록 갈망하던 사랑을 왜 거부했을까? 그 질문이 깊숙이 나를 찔렀다. 내 안의 공허함을 마주하지 않는 한, 어떤 사랑도 내게 닿을 수 없음을. 두려웠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이 내 안의 상처를 들춰낼까봐였다. 사랑은 나를 투명하게 만들었고, 숨기고 싶었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사랑이 거울처럼 나를 비출 때마다 나는 떨었다. 그 거울 속 일그러져 보이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마치 허기진 사람처럼 사랑이라 불리던 무언가를 채워야만 했다. 그렇게 해야 나 자신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랑이라는 밥이 내 존재를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것처럼. 하지만 그 빈자리를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허기는 여전했다. 사랑은 나를 채우는 대신, 그 허기와 맞닥뜨리게 했다. 내가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이 비추는 나 자신이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불안이 나를 덮쳤다. 낮에는 사람들 속에서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밤이 오면 모든 것이 또렷해졌다. 질문들이 고요 속에서 선명해졌다. 왜 나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왜 자꾸 멀어져만 갈까?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뒤척이며 밤을 보냈다. 질문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힌 가시처럼 아팠다. 피해 다니려 했지만 결국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만큼 지독히도 나를 따라다녀 피할 수 없었다.


나를 구원해주리라 믿었던 세상의 사랑이 결국 나를 가장 나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나를 구원해줄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그 사랑이 내 안의 모든 상처를 드러낼까 두려워 도망쳤다. 이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신은 우리를 외롭게 만들어 결국 우리 자신에게로 이끈다.” 외로움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힘이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사랑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랑이 비추는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음이 외로움을 더 깊고 아프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향한 미움이 사랑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미움은 교만과 오만으로, 때로는 시기로 변했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못난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연약함과 불안을 그토록 숨기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깊은 밤의 고독은 내 모든 결핍을 낱낱이 드러냈다.


묻고 또 묻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며, 삶은 계속해서 나를 파괴했다. 내 안에서 스스로를 거부하는 목소리와 끊임없이 싸웠다. 여전히 그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 속에서 조금씩 깨닫는다.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삶을 사랑하고 싶었다. 세상을 사랑하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어려울까?


사랑이란 질문은 나를 부수고, 다시 세워 나가는 고통의 과정이었다. 내 안에 숨겨진 상처들을 헤집으며 답을 찾으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끝없이 무너졌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울음이 터졌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토록 나를 무너뜨릴 줄은 몰랐다. 오랫동안 부정하려 했던 상처들이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났을 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나를 짓눌러 왔는지 깨달았다. 그 고독과 외로움은 사실은 나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답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 답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왜’와 ‘어떻게’라는 물음표가 있어야 ‘아!’ 하고 무릎을 치는 느낌표가 생긴다.”


아, 나의 물음이 마침내 느낌표에 도달하기까지. 이 사랑이 나를 넘어서고, 더 멀리 퍼질 때까지. 나는 알아차림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다.


사랑이란 씨앗은 질문 속에서 자란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그 물음표는 마침내 나를 향한 용서와 수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결국 사랑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의 사랑도 내 안에 들어올 수 없고, 그 누구의 사랑도 내게 닿을 수 없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알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언제나 고통을 동반한다.지금 나는 여전히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 서 있다. 그 길은 길고, 가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반드시 꽃이 피어날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고통과 투쟁이 그 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임을 안다.


나는 묻는다. 그리고 비로소 본다.
그렇게 질문의 투쟁 속에서 다시 사랑으로 태어난다.


*오늘이 질문

당신은 삶에서 무언가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기억이 있나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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