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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23. 2024

12. 팥인가 슈크림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선택, 살아있음의 자유를 누리고 있나요?"

“붕어빵 3개에 2,000원”


찬 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들며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 겨울이 올 때쯤이면 꼭 지갑에 천원짜리 지폐를 넣어다닌다. 언제 어디서 붕어빵을 만난지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집 근처에 붕어빵 아저씨가 친근하게 인사를 건낸다.


지갑 속에 든 지폐를 세어보다가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은 팥일까, 아니면 슈크림일까?


“어떻게 드릴까요?”
 "...."


잠깐의 침묵. 이 작은 순간에도 선택의 무게가 살짝 느껴진다. 아, 이건 꽤 중요한 선택이겠지.


"팥 2개, 슈크림 1개 주세요.”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인생은 이렇게 매일 작은 선택들로 가득 차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시작되는 그 퍼즐 조각들. 커피를 마실까, 차를 마실까? 오늘 입을 옷은 무엇을 고를까? 점심 메뉴는 또 어떻게 정하지? 마치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가끔은 그 사소한 선택들이 나를 생각보다 더 멀리 데려다준다. 오늘의 이 작은 선택들이 정말 중요한 걸까?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의미 없이 지나가는 순간들일 뿐일까? 하찮게 느껴지던 결정들이 어느 순간 불쑥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다 보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커진다.


선택은, 왜 이토록 어려울까?


‘앗, 뜨거워!’


잠시 손에 들린 붕어빵을 바라본다. 머리부터 먹을까, 아니면 꼬리부터? 또다시 선택의 순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이없는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사소한 순간에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말이다.


이렇게 심각할 일인가?


사소한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진로, 인간관계,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질문 앞에서는 누구나 쉽게 머뭇거리게 된다. 몇 년 전, 진로를 두고 머리를 싸맸던 때가 떠오른다. 한쪽은 안정, 다른 한쪽은 모험. 어느 쪽을 골라도 후회할 수 있다니. 그때 처음 알았다. 선택이란 단순히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더 복잡한 무언가라는 것을.


나는 작은 일에서는 대체로 빠르게 결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정작 정말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주저하곤 했다. 인생의 큰 결정을 앞두고 느꼈던 두려움. 매일 밤 잠들기 전, 머릿속을 떠다니던 질문들.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이 선택으로 내 인생이 괜찮아질까?’ 그때의 고민은 마치 끝없는 길을 걷는 듯했다. 발걸음을 떼면 다음에는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고, 선택마다 나를 휘어감싸는 불확실성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할 때면 선택은 더 어려졌고,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선택이 이렇게 무거울 줄이야.'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자유롭기 때문에 두렵다."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는 의미다. 그 책임이 바로 선택의 무게 아닐까?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자유를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코 가볍지 않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그리고 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 앞에서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흔들리게 된다.


사실, 선택이란 단순히 하나를 고르는 일을 넘어,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 안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그 선택이 내게 미칠 영향에 대한 불안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하지만 이 수많은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선택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잃는 듯 느끼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나를 진정으로 이끌어 줄 길을 좁혀가는 것이다. 모든 가능성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하나를 고른다는 것은 곧 내가 정말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기도 하다. 어쩌면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잠깐일뿐 그 선택 덕분에 새로운 무언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선택은 포기라기보다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다.


그렇다고 선택을 미루는 것이 답은 아니다. 우리는 가끔 선택을 미루면서 안심하려고 한다. "나중에 결정하지 뭐." 하지만 그 순간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사이에도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마치 강물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가는 것처럼, 돌아보면 어느새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인생은 계속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선택은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선택은 그저 길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힘과 같다. 선택하지 않으면 그저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시간 속에 떠다니는 존재가 될 뿐이다. 작은 것 하나조차도 선택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주도권을 잃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다. 내가 움직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선택은 곧 실천이고, 실천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아무리 멋진 계획이 있어도 실천하지 않으면 그저 머릿속에서 멈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붕어빵처럼, 손에 들고도 먹지 않으면 그 뜨거운 맛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은 뜨겁더라도, 한 입 베어물어야 그 맛을 알 수 있다.


난, 다 식은 붕어빵을 먹고 싶진 않다.


이처럼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선택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팥이냐 슈크림이냐를 고르는 일이든, 내일 먹을 점심을 고민하는 일이든,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결국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다. 오늘 무심코 내린 작은 결정들이 언젠가 더 큰 선택의 순간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그리고 깨닫는다.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삶을 책임지는 행위자가 된다는 것을. 그 선택이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를 말해준다. 실천 없는 선택은 그저 공허한 생각에 불과하다.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선택이다.




빅터 프랭클은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할 자유다"라고 말했다. 그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다. 선택이란 결국 외부의 조건이 아닌, 내 안에서 나오는 자유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그래서 어떤면에서 사소한 선택의 연속은 근육을 키우는 일과 비슷하다.


문득, 나에게 묻고 싶어진다.


과연 나는 오늘 삶이 나에게 준 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 걸까? 내 앞에 놓인 선택들, 그 순간순간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길로 나를 이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 힘없이 휩쓸려 떠밀려가는 것은 아닐까? 자유란 이렇게 주어진다고 끝나는 게 아닐테니 말이다. 그 자유를 어떻게 쓸지, 그것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문제는 아닐까?


아, 더이상 내 삶을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


우리가 매일 하는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삶을 만든다. 작은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나의 인생을 빚어내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지 못할 것이다. 선택은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고, 실존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음을 알아차린다.


오늘도 나는 그 자유를 만끽하며, 선택이라는 즐거움을 느낀다. 오늘의 작은 선택이 나를 더 나은 내일로 데려갈 테니까.


집으로 향하는 길게 늘어진 붕어빵 줄을 바라본다. 다시금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또 오셨네요.어떻게 드릴까요?”
"오늘은 슈크림 3개로 주세요.”


그래, 오늘의 선택도 꽤 괜찮았어.


별거 아닌 이 결정 앞에서, 오늘도 나는 선택의 자유를, 살아있음의 기쁨을 만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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