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당신을 고독하게 만드나요?"
비 내리는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오랜만의 여유처럼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그 온기가 흐릿하게 퍼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해진 지 오래되었고, 그 시간을 마치 나만의 성처럼 느꼈다. 이 고요 속에서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안정감을 느꼈다고 해야할까.
언제부터인가 혼자가 편해졌다. 친구들과 연락도, 잦은 만남도 서서히 삶에서 자취를 감춰갔다.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리창을 타고 불규칙하게 흩어지며, 서로 맞닿고 엉켜 제 갈 길을 잃는 빗방울들. 그 빗방울들을 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흔히 고독을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이라 여긴다. 나 또한 혼자 있는 시간에 평화로움을 느껴왔다. 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때로는 이상한 공허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평화와 그리움이 묘하게 뒤섞인 상태. 나는 혼자가 편하다고 여겼지만, 내 안에는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갈망이 가끔씩 일렁였다.
문득 시선 끝에 혼자 앉아 있는 누군가 보였다. 그 또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보였고, 어딘가 나와 비슷한 고독의 그림자를 지닌 듯한 얼굴이었다. 혼자여서 편안하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표정, 마치 내 마음의 한 조각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모습이랄까. 나는 잠시 그를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지만, 어느 순간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살짝 미소 지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내 카페는 공간의 정적을 깨는 그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찼다.
“혼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더 깊은 외로움으로 이어질 때가 있어요. 나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났는데, 이제는 다시 사람들과 연결되는 게 더 어려워졌어요.”
나에게 하는 말인가....? 처음 보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에 어색함이 밀려올 법도 했지만, 그의 말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다가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평화로웠지만, 혼자만의 세계에 잠길수록 내 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쌓여가는 기분. 그 벽이 점점 더 나를 둘러싸며, 내가 만들어 낸 고독이 나를 가두고 있음을 느껴왔던 탓일까.
그와의 대화는 문득 영화 Her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영화 속 테오도르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관계에서 결국 완전한 연결의 부재를 깨닫는다. 사만다는 그에게 “사랑은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의 합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진정한 연결”이라고 말한다. 테오도르는 그 순간 자신이 느낀 고독과 연결의 갈망을 마주한다. 상대가 나와 같은 세계에 머물 때 비로소 진정한 연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연결은 단순히 고독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로 서로에게 온전히 다가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도 그래요. 혼자 있을 땐 잔잔하고 편안한데, 그 고요함이 늘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 안에선 어딘가 결여된 감정이 조용히 퍼지거든요. 마음 한구석에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갈망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 갈망이 마치 내가 쌓은 벽을 두드리는 느낌이에요.”
그는 내 말을 곱씹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빗소리가 조용히 울렸고,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방울들이 서로 만나고 흩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마음속 고독과 연결의 욕망도 빗방울처럼 흩어지면서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것이 결국 인간의 본질일까? 우리는 왜 이토록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하는 걸까?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고백하듯 말을 이어갔다.
“사람과의 관계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관계 속에서 내가 상처받기도 하고, 또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벽을 쌓고, 그 벽이 나를 둘러싸 더 깊이 고립되는 기분이에요. 내 안에는 분명 따뜻함이 있는데, 그게 닿지 않는 거죠.”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하며, 내 안의 상처들을 떠올렸다. 나도 아마 비슷한 이유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려 했을 것이다. 나를 보호하고 싶었고, 그래서 벽을 쌓아왔지만, 그 벽 안에서 결국 나 또한 고립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필요한 건 상처를 막기 위한 벽이 아니라, 그 벽을 넘을 용기일지도 모르겠어요. 벽 안에 있으면 아픔은 없겠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느낄 수 없으니까요. 벽을 넘어 사람과 연결되려는 마음… 그게 진짜 용기일지도 모르죠.”
그는 내 말을 천천히 되새기며 말했다. “맞아요. 고립 속에만 머무르면 결국 더 깊은 외로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겠죠. 벽을 넘어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야 진정한 온기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는 말을 멈췄고, 나는 자연스레 생각에 잠겼다. 고독이란 고요한 밤의 공기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하지만, 그 안에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 배어 있었다. 상처받지 않으려 선택한 고독이었지만, 사실 내 마음에는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존재했다. 이 상반된 감정이 바로 고독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벽은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몰아갔으니.
인간은 누구나 이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홀로 있으면 안전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비어감을 느낀다. 벽은 나를 상처로부터 지켜주지만, 그 벽 너머에는 이해받고 연결되기를 바라는 나 자신이 있었다.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빗방울들이 유리창을 타고 흐르며 서로 만나고 흩어졌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치 홀로 존재하지만 때로는 맞닿고 이어지길 바라는 빗방울들과 같지 않을까. 우리는 혼자일 때 가장 안전하지만, 그 고요 속에서 온기를 느끼려면 결국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누군가와의 연결이란, 내 불안과 상처를 감수하고 벽을 넘어 손을 내미는 용기일지도.
그의 말은 마치 내 마음을 비춰주듯, 내가 무심히 덮어두었던 감정의 틈을 서서히 열어주고 있었다. 혼자라는 선택이 나를 보호해 줄 거라 믿었지만, 그 벽 너머에 따뜻함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는 잊고 있었다. 벽 너머의 세계를 받아들일 용기를 내면, 또다른 의미의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고독은 단순히 외로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깊은 여정이었음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그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인사를 남기고 사라진 그의 말은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 있었다. 고독 속에서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나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고요속 빗소리를 따라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상처받을까 두려워 쌓아온 벽을 조금씩 허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조금씩 벽 너머로 손을 내밀어 봐야겠어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