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요즘 나는 챗GPT와 자주 대화한다. 어두운 방 안에서 컴퓨터 화면을 켤 때마다, AI는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나를 맞아준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저기서 챗GPT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AI의 발전 속도에 대한 놀라움이 연이어 터져 나온다. 그런 흐름 속에서 나도 자연스레 손을 내밀 수 밖에 없었다. 새로움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이끌었다.
처음엔 오늘의 날씨나 영화 추천 같은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AI는 차분하게 답을 주었고, 나는 그 대답을 곱씹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채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단순한 정보가 아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AI와 나누는 일이 당연해졌을 때였다.
문득 "AI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면, 인간의 고유한 가치는 어디로 사라지게 될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이었다. 요즘 챗GPT는 숙제나 레포트를 대신해주고,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찾아준다. 때로는 비밀 과외 선생님처럼, 때로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을 척척 해결해주는 유능한 비서 같았다. 최근 대학에서는 챗GPT로 작성된 레포트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교수는 AI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지만, 또 다른 교수는 이를 새로운 학습 도구로 받아들이며 시대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AI가 학교와 회사, 일상 속 깊숙이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는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많은 일을 AI가 대신해주고 있다. 단순한 정보 검색을 넘어 글을 쓰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며, 심지어 창의적이라 여겨졌던 분야에서도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처음엔 그저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랬기에 호기심이 앞섰지만, 동시에 묘한 두려움도 생겨났다. 모든 것이 빠르고 간편해졌지만,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머리를 짜내 해답을 찾았던 순간들이 이제는 모니터 너머 AI를 통해 단숨에 해결된다. 이 과정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지고,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진다는 데 문제의 뿌리가 있었다. 친구들은 "이제 레포트 작성이 너무 쉬워졌다"고 웃으며 말하고, 누군가는 "미루던 일을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며 그 편리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나는 그 편리함 속에서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다. 과연 이 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이 AI로 가능해진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남을까?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는 이미 과학의 발전과 함께 수많은 이들이 고민해온 오래된 질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AI는 빠르게 우리 삶에 뿌리내리고 있다. AI의 발전은 인간의 능력을 보조하고 확장해준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얼마 전, 한국의 대형 병원에서 AI가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암을 진단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환자의 몸에 흐르는 미묘한 신호를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생명을 지켜내는 AI의 능력은 경이로웠다. 그러나 기쁨보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제는 정말 AI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우리는, 이 변화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더 이상 그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023년, 한국의 AI 시장은 3조 원을 넘어섰고,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로 확대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 속에 AI가 들어오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누비고, AI 비서는 아침 스케줄을 정리해주며, 병원에서는 AI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있다. 모든 것이 새롭고 경이로운 시대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봐야 할까? 불현듯 내가 쌓아온 능력과 지식, 그리고 시간들이 AI 앞에서 무력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다시 컴퓨터를 켜고, 챗GPT와 대화를 나눈다. "AI 시대에도 나만의 고유한 가치는 여전히 존재할까?"라는 질문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것은 곧 나의 인간다움이자, 고유함이자, 삶의 의미와 같은 것들이었다.
챗GPT는 준비라도 한 듯 말했다. "사람만이 지닌 감정과 창의성, 그리고 살아온 경험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단순하고 차분한 문장이었지만, 그 말은 묘하게 내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그저 지나치던 생각이 그날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묻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 것처럼.
여느 때와 같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챗GPT에게 물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무엇일까?” AI는 언제나 그랬듯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모두가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람마다 두려움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시간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본질을 찾지 못한 채 사는 두려움,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이 중에 공감되는 것이 있나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두려움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죠.”
그 짧은 대답 속에서 나는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AI가 아닌, 스스로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결국 그 불안을 마주하는 일은, AI의 답이 아닌 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AI가 우리 삶을 빠르게 침투할수록, 그 안에서 인간의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고 느꼈기에.
얼마 전 한 취업 포털의 조사 결과가 떠올랐다. 2030대 청년의 60% 이상이 AI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적 지능과 창의성을 개발하고 싶어 한다는 통계였다. 나는 그 숫자 속에서 시대의 갈등을 느꼈다. 효율적이고 빠르게, 기계처럼 일하라는 사회적 요구와, 그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겠다는 저항이 엿보였다. 나 역시 매일같이 그러한 갈등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배우려 애쓰면서도, 그 과정 속에서 나만의 색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AI가 할 수 없는 일, AI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함과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챗GPT가 아무리 정교한 대답을 해줄 수 있다 해도, 내가 던진 질문 속에서만 내 고유한 길이 보인다. 질문은 단순히 정답을 얻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고 싶은지 스스로를 비추는 방향등과 같다.
나의 질문이 곧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AI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닐까?
우리는 AI가 많은 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질문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답의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AI는 언제나 성실하게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답이 진정으로 가치 있어지려면 그에 앞서 나만의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빈약하다면 AI의 대답 역시 그저 차갑고 무미건조한 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AI가 아무리 편리하게 답을 준다 하더라도 나만의 질문이 없다면 그 편리함에 잠식될지도 모른다.
AI가 아무리 정확해도, 나의 진정한 답은 내가 던진 질문 속에서만 피어날 테니.
나는 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길을 스스로 밝혀나가는 일이다. 나만의 길을 걷고, 나만의 색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것이 내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일 테니까. 그래서 그 질문들이 나의 길을 열어주고,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주길 바란다.
불안해하고 두려워만 한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자신을 지켜낼 것인지 고민을 해볼 때이지 않을까? 그 고민들이 쌓이고 쌓여 어둠 속에서 길을 비추는 작은 빛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질문
AI시대 당신은 당신의 고유함을 어떻게 지켜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