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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아이에게

by 나린

가끔, 아니 꽤 자주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합니다.


내 안에는 어린아이가 하나 살고 있어요. 이 아이는 놀랍도록 모순적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발버둥 치고,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으면서도, 그것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조차 모르죠.


떼쓰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불안해서 숨고 싶은 아이. 타인보다 자신을 먼저 선택하고 싶어 하는 아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나 욕구가 좌절될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울음을 터뜨립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악해. 어린아이를 봐.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위해 울고 떼쓰고, 타인을 위한 배려 따윈 생각하지 않아.”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나쁜 사람이 성공하고, 착한 사람들이 손해 본다고들 하잖아요.이기적으로 자신만 챙기기 바쁜 세상 속에서, 그 말은 어쩐지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는 반문하고 싶어져요.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이들을 볼 때 그토록 사랑스럽다고 느낄까요?
왜 그들의 울음과 웃음이 그렇게 투명하게 다가올까요?
왜 아이들의 순수함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장해제될까요?


어쩌면 아이들은 이기적이라기보다, 그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걸 숨기지 않고,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하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사랑을 원하면 손을 내밉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보고 ‘순수하다’고 부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타인을 배려해야 한다는 걸 배우고, 하고 싶은 말도 꾹 참아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되죠. 사회적 규범 속에서 수많은 경험을 하며, 관계라는 이름의 그물망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많은 걸 감추며 살아갑니다. 그것을 ‘성숙’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종종 혼란스러워집니다.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렇게 마음먹을 때마다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떠오릅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하지 않아도 순수를 잃는 일이 아닐까.


대화를 하다가 문득, 아무 이유 없이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내 안의 아이가 고개를 듭니다. 세상의 무게에 눌려 조용히 웅크리고 있던 그 아이가, 나도 모르게 “이제는 좀 울어도 돼” 하고 말하는 것 같아요. 그 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혼란스럽습니다. 어른이라면 이 아이를 억눌러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품어야 하는 걸까요? 어디까지 양보하고,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요? 차라리 한없이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세상살이가 더 편하지 않을까, 그게 성공하기엔 더 쉬운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래서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인간은 선한 존재일까요, 아니면 이기적인 존재일까요?

천사일까요, 악마일까요?


아마도 우리는 그 둘 중 어느 한쪽으로 완벽히 정의될 수 없는 존재일 겁니다. 때로는 너무나 이기적이면서도,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포기할 만큼 선한 마음을 품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인간이란, 천사와 악마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순적인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신이 인간을 천사와 악마 사이에 두었다면, 아마 그 이유는 ‘선과 악 중 하나를 택하라’가 아니라, 그 사이에서 사랑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때로는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용서하는 것. 내 안의 이기적인 아이를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 아이와 함께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 두 마음이 싸우는 것을 멈추지는 못하겠지만, 어쩌면 그 싸움 자체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아닐까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 영원히 완벽해질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 모순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사랑을 배워갑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고, 때로는 그 사랑이 불완전하더라도 끝없이 배우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내 안의 아이에게 살며시 속삭입니다.

“괜찮아. 너는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니야. 그냥 사람일 뿐이야.”


그리고 그 사실이,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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