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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29. 2018

낯간지러운 편지

볼리비아 : 우유니

지난밤 우유니 새벽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추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잠에 들었다. 해가 뜨고 한참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졸린 눈을 비비며 방문을 열고 나가니 문 앞에 작은 엽서 하나와 실 팔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여행 중에 가끔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싶으면 나도 모르게 손에 펜을 쥐게 되는 순간이 있어.'”라고 시작되는 이 편지는 '오누이 같은 세상에 둘도 없는 양아치 오빠가'라는 말로 끝이 났다. 그러고 보니 새벽에 숙소로 들어오기 전 재민 오빠와 마지막 인사를

나눴던 기억이 났다. 마지막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담백한 인사였다.


가만히 서서 편지를 읽고 있으니 오글거리는 문장들 사이로 괜히 먹먹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주변을 살피며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참으로 주책이었다.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라고 쓰여있던 그의 편지를 한참을 읽고 또 읽었다. 삐뚤삐뚤한 글씨 위로 한 글자씩 꾹꾹 마음을 담아 썼을 그 마음이 느껴졌다. 헤어짐이 싫어 편지 따위는 쓰지 않겠다고 말했던 나에게 굳이 엽서 한 장을 남겨놓고 갔다. 정말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는 편지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하고 싶은 말이 넘쳐흘러 그것을 다 표현하지 못할 때 펜을 들고 편지를 썼다. 하지만 글이라고 하여 말을 하는 것보다 결코 쉬운 건 아니었다. 쓰고 지우고 를 반복하며 어떤 단어가, 어떤 문장이 내 마음을 더 진정성 있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매번 고민했다. 나에게 편지는 일종의 자기 치유이자 표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여행 중에는 쉽게 편지를 쓰지 못했다.


여행을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그것과 비례하게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게 된다. 그런 관계들 속에서 깊이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 흡사 인스턴트 같은 관계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관계의 질에 비중을 크게 두는 나는 종종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럴 때면 여행에서의 만남은 여행으로 끝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새기며 여정을 이어갔다. 그런 와중에 마음이 통하는, 진솔한 대화를 나눌만한 대상을 만난다는 건 꽤나 감사한 일이다.


나보다 8살이나 많던 오빠는 뒤늦게 여행에 매력에 빠져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린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연히 만났다. 내가 기억하는 그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행동에 고스란히 묻어나던 삶은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 함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동생 여럿을 데리고 있는 큰오빠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전 날 오후 마지막을 핑계로 오빠와 진솔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언제나 삶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진지한 대화 속에 속에 낯간지러운 오글거림이 묻어난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그 또한 우리의 모습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욕구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도 하고, 배움을 얻기도 하며, 다양한 알아차림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한번 그가 준 편지 속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곱씹어 읽었다. 흐드러진 달빛 아래 펜을 들고 엽서를 적어 내려갔을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이 여행이 그에겐 편지의 글귀처럼 자신을 만나게 되는 시간이 되었던 걸까?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방문객)"


이 시처럼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형상을 넘어서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이다. 잠깐의 만남으로 한 사람의 삶을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큰 자만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난 누군가의 일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날 받은 편지는 종이 한 장에 그의 삶을 압축시켜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시간이 지난 후에, 편지를 건넨 사람은 자신이 어떤 말을 썼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편지 안에는 이미 누군가의 영원 같은 시간에 담겨있었으므로 그것으로 충분했다. 전해준 이의 마음을 어떻게 간직하느냐는 온전히 받는 사람의 몫이었다.


엽서와 함께 있던 팔찌를 손목에 찼다.  며칠 뒤, 마지막 인사가 무색하게 그를 다시 만났다. 우린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했고, 다시 여행했다.


낯간지러운 편지를 고이 마음에 담아 놓은 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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