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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11. 2018

행복을 찾는 방법, 두번째

볼리비아 : 코파카바나

여행 중에 비가 내린 날이 있었던가. 아직은 채 마르지 않은 물웅덩이 가득한 땅을 요리조리 피해 걷는 재미가 있었다. 흙탕물도 개의치 않았다. 하늘에 별은 가득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니 그것으로 괜찮았다.


오늘은 진영 언니네 2층 다락방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겨우 얼굴을 씻고 양말만 벗어놓은 채로, 고양이 잠을 청했다.

 




한 시간 전, 굳게 닫힌 숙소 문을 앞에 두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와이파이를 겨우 잡아 진영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숙소 문이 닫혀있어. 어떻게..? 사장님도 전화를 안 받아..”
“여기로 다시 와. 위에 침대 하나 남아. 오늘 같이 자자.”

가로등 불빛을 나침반 삼아 언덕을 올랐다. 익숙하지 않은 어둠과 불쾌한 떨림으로부터 잔뜩 날을 세웠다. 나는 유난히 어둠에 약했다. 그래서 이런 긴장감은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순간 날이선 감정으로부터 짜증이 올라왔다. 이 어둠도, 문이 닫혀있던 호스텔도,  질퍽거리는 땅도. 전부 싫었다.

무서움에 주위를 살필 틈도 없이 언덕을 올랐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턱 끝까지 차오르는 호흡을 고르고 뒤를 돌아봤다. 밤하늘의 온기가 따뜻하게 다가온건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정신없던 코파카바나의 거리도 밤이 되니 사색의 고요함을 품은 도시의 향기로 가득했다. 잔뜩 웅크린 마음을 살며시 건드려오는 바람이 낯설었다. 약간은 속도를 늦춰 언덕 아래 불빛을 바라보며 뒷걸음으로 걸었다. 어둠도 익숙해지니 뭐든 괜찮은 날이었다. 이 한 몸 누일 공간이 있으니 칠흑 같은 암흑도 포근히 느껴졌다.


오늘은 운명의 여신 ‘티케 Tyche’(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행운 또는 운명의 여신)가 선물한 날이 틀림없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어설픈 요리 파티를 했던 일도, 맥주 한 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던 대화들도, 굵어진 빗줄기에 발이 묶인 것도, 신데렐라 마냥 헐레벌떡 숙소를 향해 뛰어갔던 것도. 이 모든 상황들은 오늘의 어둠을 만나게 하려는 필연적인 순간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티케는 자신이 가진 묘한 신비함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둠으로, 빗물로, 바람으로 그리고 별들의 반짝임으로 왔다. 이처럼 행복은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지만 결국은 내가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의 선택에 따라 우연은 운명이 되고, 운명은 행복이 되기도 한다.


여태까지 나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며 살았던 걸까. 모든것은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경험하게 될 하나의 파도에 지나지 않았다. 부서지는 파도라면 기꺼이 맞이 할 수 있었다.


코파카바나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 이곳에서 보는 노을은 환상적이다.


인간의 존재는 완전 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불완전한 만큼 삶 자체도 불완전으로부터 벗어나긴 힘들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지 못할 때 우리는 분노한다. 그러고보면 받아들임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쉬운 걸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연약함을 어떻게 인정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돌이켜보니 ‘운명,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식상한 이 문장은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있었다.


"깨끗한 신발이야 더러워지면 어때. 언젠가 비는 다시 내릴 테고, 그 빗물에 씻겨내면 되는거잖아." 우리에겐 이런 긍정의 마음가짐이 필요한건 아닐까?




오늘도 여신 티케로부터 불완전한 하루라는 운명의 실타래를 선물 받았다. 그것을 한 순간의 우연으로 만들지, 운명적인 행복으로 만들지는 내 손에 달렸다.


물웅덩이 위로 흐드러지는 달빛이 찬란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별을 따라 걸었다.



- 인생의 계획, 글래디 로울러-


난 인생의 계획을 세웠다.
청춘의 희망으로 가득 차 새벽빛 속에서
난 오직 행복한 시간을 꿈꾸었다.
내 계획서엔
화창한 날들만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수평선엔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폭풍은 신께서 미리 알려주시리라 믿었다.

슬픔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 계획서에다
난 그런 것들을 마련해놓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의 아픔이
길 저 아래쪽에 기다리고 있는걸
난 내다볼 수 없었다.

내 계획서는 오직 성공을 위한 것이었으며
어떤 수첩에도 실패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손실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다.

난 오직 얻을 것만 계획했다.
비록 예기치 않은 비가 뿌려릴지라도
곧 무지개가 뜰 거라고 난 믿었다.

인생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인생은 나를 위해 또 다른 계획서를 세워놓았다.
현명하게도 그것은 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내가 경솔함을 깨닫고
더 많은 걸 배울 필요가 있을 때까지

이제 인생의 저무는 황혼 속에 앉아
난 안다. 인생이 얼마나 지혜롭게
나를 위한 계획을 서를 만들었나를
그리고 이제 난 안다
그 또 다른 계획서가 나에게는 최상의 것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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