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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린 Oct 18. 2019

리스본 28번 트램

포르투갈 : 리스본

오늘은 저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아침 일찍부터 그 유명한 28번 트램을 타겠다고 일찍 나왔더랬죠. 소문답게 줄이 엄청 길더라고요. 그래도 배차 시간이 짧길래 기다려 보기로 했어요. 하나 둘 앞에 서있던 사람들의 줄어들고, 앞쪽에 있던 티켓을 끊어주는 아저씨가 갑자기 중간에 줄을 딱 끊는 거 있죠. 그러더니 옆 쪽 차선으로 옮기래요. 그 한 명의 말에 20명 되는 인원이 우르르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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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기다리던 트램이 왔어요. 하나 둘 트램에 올라타요. 작은 트램 안에 사람들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자리가 없을 때, 툭. 툭 창문을 치며 기사 아저씨에게 출발 신호를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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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못 탔어요. 앞에 외국인 부부와 귀여운 모녀가 있어요. 뒤로는 두세 팀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곧 다음 트램을 탈 수 있을 거라며 기대하고 있었죠. 그런데 웬걸, 갑자기 옆 차선으로 트램이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기다렸던 그쪽 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 차례니까 그쪽으로 갔어요. 근데 티켓 아저씨가 갑자기 저 뒤로 가서 다시 줄을 서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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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부부가 화를 내며 따졌어요. ‘지금 우리가 탈 차례이고, 우리가 이 사람들보다 먼저 왔다. 당신이 티켓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저쪽에 나눠서 줄 세우지 않았냐. 근데 왜 다시 줄을 서라고 하냐.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티켓 아저씨는 막무가내예요. 들을 생각이 없어요. ‘너네가 그전에 트램을 탔어야지 왜 안 탔냐. 난 모른다 뒤에 가서 줄을 서라.’ 나중엔 말까지 바꾸더라고요. 자기는 저쪽에 가서 줄을 서라고 한 적이 없대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어요. 우리 앞 뒤에 줄 서있던 사람들 모두 화가 났어요. 하지만 어떻게 해요. 지금 여기서 대장은 티켓 아저씨인걸요. 서로 언성이 높아졌어요. 화가 났지만, 결국 우린 뒤에 가서 줄을 서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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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지 않는 화를 겨우겨우 삭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동생이 말했어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들 타려고 하는 거야?”
순간 아차 싶었어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이게 뭐라고 이렇게들 타려고 하는 걸까요.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몰라요. 그저 유명하다니까 타는 거예요.


그렇게 힘들게 트램을 탔어요. 덜컹덜컹 낡은 소리를 내며 잘 달린다 싶었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봐요. 얼마 못가 갑자기 트램이 멈췄어요. 정해긴 길로 밖에 다닐 수 없는 트램 특성상, 좁은 골목에 차가 세워져 있으면 움직일 수 없어요. 알고 보니 반대편에서 오는 트램이 차 때문에 못 오고 있네요. 골목 한가운데 주차되어있는 차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는 상황이 되고 말았어요. 10분 20분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 기다리다가 결국 내리기로 했어요.


조금 걷다 보니 트램 7-8대가 줄줄이 사탕처럼 멈춰있는 거 있죠. 분명 사람들로 가득했을 텐데, 지금은 텅 비어있어요. 골목은 트램 주차장이 됐어요. 기사님들은 내려서 담소를 나눠요. 관광객들은 트램을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줘요. 언제 다시 출발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때가 되면 가는 거예요.

피식하고 웃음이 났어요. 참 재미있는 상황이다 싶었었어요. 누군가에겐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고 누군가에게는 아주 특별한 일상이 묘하게 섞여있는 광경이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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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트램은 한 번 타봤으니 됐어. 그냥 슬슬 걸어가자.”

그렇게 한참을 걸었어요. 걸으니 더 잘 보이고 좋은 것 같아요. 느림의 미학.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봐요. 물론, 태양이 뜨겁긴 하지만요. 뜨거운 태양에 지칠 때쯤 숙소에 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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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야경을 보러 가기로 했어요. 전철을 탔어요. 고장이 났대요. ‘아, 오늘은 안 풀리는 날이구나’ 하고 주저 없이 밖으로 나왔지 뭐예요. 트램으로 가는 방법이 있었는데 탈까 하다가 내심 겁이 나더라고요. 아침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근데 운이 좋은 건지 아침에는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면서 탔던 트램을 한 번에 탔어요. 그것도 아주 여유로운 좌석에 앉아서,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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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뭐하러 그렇게 탔나 싶다. 그냥 맘 편하게 아무거나 타면 되는 것을. 훨씬 여유롭고 좋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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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남들이 하는 건 다 하고 싶은가 봐요. 유명하다고 하는 건 한 번쯤 해봐야 해요. 그 기준에 갇히길 선택한 건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몰라요.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오늘은 아무 데도 안 가면 좀 어때요.

남들이 하는 거 안 하면 좀 어때요.

그냥 앉아서 멍하니 더위나 식히면 좀 어때요.

오늘은 그거면 충분해요. 지금의 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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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며칠이 지난 후엔 또 어딘가를 가겠죠.
그리고 또, 비슷한 상황을 만날 거예요.
이래서 삶을 여행이라고 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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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버스를 타야겠어요.
왜냐하면, 에그타르트를 먹으러 멀리 가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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