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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1 기억, 그 동네

<<1. 귤꽃- 2화>>

by 그래놀라

1981년

엄마는 딸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버스길에 올랐다. 사우디로 돈 벌러 간 남편은 몇 달째 소식이 없었고, 그녀는 여덟 살 아들과 여섯 살 딸을 데리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말수가 줄어 있었다.


그날따라 딸아이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였다. 희수는 그 손길이 너무 어색했다. 평소 말도 없고 차가웠던 엄마가 갑자기 다정하게 구는 것이 이상하고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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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야, 이 말 잘 들어야 해. 거기 가면, 절대 꼼짝 말고 앉아 있어. 엄마가 올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알았지?"


"엄마, 나... 버리러 가는 거야?"


엄마는 놀라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절대 아니야."


버스를 두서너 번 갈아타고 모녀가 내린 곳은 청심동 어귀였다. 희수의 손엔 막대사탕 하나가 쥐어져 있었고 엄마는 가는 길 내내 당부하며 채근질을 했다.

희수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이며 엄마를 따라 걸었다.


‘봉자네 젓갈집’, 모녀가 찾아간 곳은 노포가 늘어선 좁은 길 작은 젓갈 가게였다.

가게 앞에는 명란젓, 창난젓, 새우젓... 각종 젓갈이 물컹하게 담겨있는 고무 대야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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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쿰한 짠내가 진하게 코를 찔렀다. 어린 희수는 그 모든 게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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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 금방 올게.”


그리고 이내 젓갈 가게 안에 희수를 두고 사라졌다. 대낮인데도 불이 꺼져 있으니 가게 안은 어두웠다. 젓갈 위로 파리만 날아다녔다. 가끔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셔터가 삐걱거렸다.


희수는 막대사탕을 입에 문 채, 딱딱한 구들방에 웅크리고 앉았다. 배가 고팠고 오줌도 마려웠다. 무서워서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해는 기울었고 가게 안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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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부터 자꾸 내다보던 앞 집 과일가게 아줌마가 힐끔거리는 눈으로 희수를 몇 번 훑어보더니, 마침내 못 참고 한마디 던졌다.


“거참, 어미 독하다. 저리 어린 아기를 혼자 두고 쏘댕 기나...”


툭툭 걸음을 옮겨 젓갈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아줌마가 손을 올려 가게 입구에 늘어진 전구를 켜자, 희미한 불빛이 깜박이며 젓갈 대야가 나타났다.


전등은 가게 앞을 비췄으나 안쪽은 여전히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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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배 안 고프냐?”


“아줌마... 오줌 마려워요...”


아줌마는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아이고, 짠해라. 얼마나 마려웠을까... 일로 와~ 뒷간 가자.”


“안 돼요. 엄마가 꼼짝 말고 가게에만 있으랬어요.”


과일가게 아줌마는 허리에 손을 올려 짚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워메 깝깝해라... 무슨 말을 그리도 잘 듣는다니... 아가야, 그냥 거기 수채구멍 앞에서 쉬야해라. 아줌마가 망 봐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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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수는 울먹이며 아줌마가 가리킨 수채구멍 앞에 쪼그려 앉았고, 아줌마는 등 뒤로 돌아서선 양팔을 벌려 그 앞을 막아섰다.


그날, 희수는 아줌마의 도시락을 얻어먹었고, 귤도 받아먹었다.


비릿한 젓갈 냄새로 가득한 가게 안에서 귤의 상큼한 단맛은 잠시나마 살 것 같았다. 아줌마는 귤껍질을 까서 고운 알맹이를 희수 입에 넣어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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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엄마도 참, 징하다... 그래도 어쩌겠냐? 돈 받으러 다닌다는데... 사는 게 하도 팍팍하니까 자식 챙길 여유가 없겠지.”


희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어쩌다가 봉자한테 걸렸을까? 그 돈, 빨리 받기 힘들 텐데... 그까짓 몇 푼씩 받겠다고~ 이리 어린애까지 고생시키고 그럼 쓰나...”


“인자 아가야 너 여기 자주 오너라~ 아줌마가 오줌 망도 봐주고, 말동무도 해줄게. 담에도 엄마가 ‘청심동 가쟈~’ 허거든, ‘네~’ 하고 따라오너라 알겠지?”


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를 돕는 것이 뭔지를 과일가게 아줌마의 말을 들으며 어렴풋이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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