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4. 귤 껍데기가 아닌, 귤꽃이 되라.

<<1. 귤꽃- 4화 >>

by 그래놀라

그날은 유난히 춥고 바람도 매서웠다. 희수는 엄마가 쥐어준 막대사탕을 먹지 않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아줌마가 눈에 띄자 달려가 사탕을 건넸다.

“아줌마... 맨날 귤도 주고 밥도 주고, 고마워요.”


아줌마는 희수 덥석 안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메, 따습고 귀해라... 어째쓰까... 우리 아가 희수를...”


엄마는 젓갈가게에서 드디어 진짜 봉자를 만나 담판을 벌이는 중이었다.

4_3.png

희수는 과일가게 봉자아줌마 무릎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quotient74_httpss.mj.runE8Q3ZhegA_0_httpss.mj.runMrIjMNmLsaY__75c0661e-5cb6-4e0e-a846-7d14599184d2_1.png

아줌마는 그날따라 귤껍질을 정성스럽게 깠다. 여섯 갈래로 나눠 껍질을 벗긴 뒤 알맹이를 쏙 꺼냈다. 갈래를 다시 가운데로 모아 겹쳐놓고 가운데를 성냥개비로 꾹 눌러 고정했다.

quotient74_httpss.mj.run_0WOUCw8-Rw_The_process_of_making_--a_28140779-55bf-4080-aa7d-641e69040511_3.png

“여기, 봐봐 희수야. 이게 뭐게?”


“와~ 꽃 같아!”

quotient74_httpss.mj.runhbEkFmJXSFs_httpss.mj.runm9mjEJVMca4__5c94bab3-7121-421c-856a-a4957fae4769_1.png
"그래, 맞아. 귤꽃이지. 귤껍데기라고 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씻어서 말리면 차가 되고, 설탕에 조리면 쨈이 되고, 이렇게 곱게 접으면 꽃이 되는 거야."


아줌마는 귤꽃을 희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희수야, 인제 너도 그렇게 살아. 없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야. 하찮게 보지 말고, 그 없는 걸 아끼고 곱게 써서, 향기 나는 사람이 돼야 쓰는 거야."
"너는 귤껍데기가 아니라, 귤꽃이야."


희수는 조심스레, 귤꽃을 두 손으로 꼭 감싸 쥐었다.

quotient74_httpss.mj.runm9mjEJVMca4_A_6-year-old_Korean_girl__7a25bccd-04a0-4587-9058-0ff2b47bbc8e_2.png

언성이 오가던 젓갈집이 어느덧 조용해지고 희수엄마는 드디어 돈을 받았는지 손을 툭툭 털며 시원섭섭한 얼굴로 가게 안에서 나왔다.


그날을 마지막으로, 청심동엔 다시 가지 않았다.

quotient74_httpss.mj.run-bysWDWY4TY_A_hand-drawn_4B_pencil_an_db349531-8409-4fd8-9606-d45c1d2facb5_1 (1).png

귤꽃은 봉자 아줌마가 희수에게 전해준 마지막 인사였다.



quotient74_httpss.mj.runhbEkFmJXSFs_short_bobbed_hair_--ar_23_11b17c59-b5ec-46ae-b92a-92c8637a85b7_0.png

그날, 아직 어린 희수는 몰랐다. 귤꽃이 얼마나 소중한 선물인지, 그걸 건네는 아줌마의 말이 얼마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건지.


조심스럽게 애쓴 어른의 사랑을 희수는 훗날에서야 알게 됐다. 진짜 선물은 특별한 날 준비된 마음이 아니라 우리의 살아가는 어느 틈에 아무렇지 않은 척 건네는 말, 그 순간에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인생에 향기처럼 남는다.

quotient74_httpss.mj.runhbEkFmJXSFs_Please_redraw_the_picture_75b74e29-934b-43d9-b588-375a99fc9427_3.png

keyword
이전 03화3. 진짜 봉자 말고, "봉자 아줌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