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귤꽃- 6화>>
대기 번호판을 보며 서성이던 희수는, 순서가 오자 서서히 회상에서 빠져나왔다.
전입신고를 마친 후 3층 문화센터로 향했다. 교육장들은 모두 문이 잠겨 있었고, 긴 복도를 따라 걸으니 시간의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문에는 ‘주민체육관’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예상보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운동기구들의 오래된 기계음 사이로 ‘덜덜 덜덜’ 유난히 큰 소리가 들려왔다. 네댓 명의 어르신들이 벨트마사지기 위에 올라타 밴드에 허리를 맡긴 채 굽은 몸을 세우며 흔들리고 있었다.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할머니 한 분이 낯선 이방인을 보듯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의심스러운 눈빛이 가득했다. 그제야 눈치챘다.
이곳은 노인들의 세계, 하얀 수건의 할머니는 눈빛 하나하나가 규칙이고 그 승낙 없이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을 것 같은 이 공간의 문지기였다.
할머니의 시선을 피한 채 카운터로 다가가 직원에게 등록 방법과 시간표를 물었다.
“처음 왔는데요. 여기서 신청하나요?”
“2층 주민센터에서 등록하시면, 내일부터 바로 이용하실 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락커 사용과 탈의실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그때였다. 문지기 할머니가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역시... 안된다는 건가?’
놀라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마주했다.
“예, 어르신... 무슨…”
할머니는 주섬주섬 비닐봉지를 뒤지더니 그 안에서 귤을 꺼내 직원과 희수에게 건넸다.
“이거 좀 드셔봐...”
귤. 노르스름한 껍질을 가진 작은 과일. 그것을 내민 손에는, 억센 세월의 흔적 같은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희수는 두 손으로 귤을 공손히 받아 들고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고, 다시 덜덜이에 올라타 부들부들 떨며 팔을 휘저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말없이 멈춰 섰다. 귤을 까서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시고, 달고, 왠지 모르게 울컥했다. 문득, 그 옛날 ‘봉자아줌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앞의 문지기 할머니에게서 아주 오래전 그 따뜻한 사람의 마음이 겹쳐졌다.
세상은 달라졌지만, 귤 하나로 전해지는 온기는 여전히 청심동에 남아 흐르고 있었다.
어린 날, 청심동 젓갈가게를 혼자 지키던 밤. 낯선 동네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와 귤을 건네주던, 봉자아줌마의 손길. 그리고 귤 한 알을 다시 받아 든 돌아온 이방인, 희수.
아무도 모르는 낯선 얼굴로 주민센터를 지나려던 그 순간, 그 귤 한 알은 "환 · 영 · 합 · 니 · 다" 라며 지금의 그녀를 받아주는 반가운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