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은, 성장의 시작이다-물화의 시간(物化의 時間)

조용필의 <I Love 수지>에서 <꿈>으로.

by whilelife


1. 떠남을 동경하다.



어린 시절, 나는 이야기를 읽고 상상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런 나에게, 크리스마스란 공식적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날이었기에 특별했다. 산타할아버지, 산타를 돕는 요정들, 루돌프 사슴, 잠든 밤 사이 산타가 몰래 놓고 간 선물, 아주 먼 시대를 살다 간 예수와 그를 핍박했던 로마시대의 이야기. 크리스마스의 밤이 화려한 것은 오너먼트와 전구의 불빛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풍성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밤이기에 더욱 반짝이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끝나면, 이제 공상과 상상의 세계는 끝나고, '지금'과 '이곳'만 남는다. 나는 항상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의 모습들이 궁금했다. 몸은 현실 속에 묶여있지만 내 머릿속은 항상 상상의 공간 속을 떠돌았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때 유독 끌리는 노래가 있었으니, 이치현과 벗님들의 <집시여인>과 조용필의 <I Love 수지>였다. 돌이켜보면, 이 두 노래에 끌렸던 것은 '떠남'에 대한 나의 바람을 잘 반영하고 있던 가삿말 때문이었다. 특히 <I Love 수지>의 노래 가사는 그냥, 어린 시절의 바로 내 모습이었다.


기차를 보면 떠나가고 싶어 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갈 곳도 없는데 자꾸만 보채던, 그 소녀를 나는 알아요.
구름을 보면 눈물이 난다 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먼 곳이라 부르는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었죠.

이 가사대로 나는 언제나 어딘가 멀리 떠나 있는 나를 상상했다. 상상 속의 나는 파랑새를 찾아다니고, 어떤 때는 허리케인 때문에 고향을 떠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다닌다. 나는 피노키오와 모험을 하고 난 뒤에는 어린 왕자를 따라 우주여행도 떠난다. 그러나 내 두 발은 땅에 묶여 어디로도 가지 못했다. '떠남'은 내게 목마름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필의 <I Love 수지>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사를, 나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을 떠난 수지가 '먼 곳'에서 '이곳'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다고 한다. 이를 달래기 위한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도 한다.

'소망대로 먼 곳에 갔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울고 있을까? 나 같으면 매일이 즐거울 텐데.'


조용필의 <I Love 수지>를 수없이 반복해서 부르며 노래의 전반부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그리고 수지가 슬퍼하는 내용을 만나면 왜 그럴까 고민했다. 매일 수십 번씩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나는 결국 '수지'가 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성년을 맞았다.





2. 떠남은 고통이다.



드디어, 어느 '먼 곳'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은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한 덕분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내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즐거웠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서울 구경을 다녔다. 내 힘으로 얻은 떠남의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열심히 살아온 대가로 대학 생활에서 성과는 분명 뚜렷했다. 그러나 마음은 점점 메말라갔다. 겉으로는 매우 알찬 서울 생활이었다. 학우들보다 공부를 두 배로 하니, 학과 장학금에 외부 장학금도 받아냈다. 운이 좋아 이벤트도 자주 당첨되어 무료 연극과 콘서트, 영화도 자주 보았다. 고궁도 자주 거닐었으며 무료 전시회도 찾아다니며 즐거운 문화생활을 했음에도, 내 마음은 점점 공허해졌다.


이렇게 서울 생활 2년 반이 지날 무렵, 내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길 가다 그냥 툭, 공부하다 그냥 툭, 김밥을 먹다가 그냥 툭, 그렇게 이유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울증이었다. 새로운 자극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로운 곳은 다시 익숙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익숙함 속에 진정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나는 다시 서울을 떠나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나의 부모님이 계신 곳, 아니 아니, 어쩌면 내 생명이 시작된 그 어느 태초의 근원, 아니 아니, 내가 태어나기 이전 무의식 상태의 그 어디쯤이 몹시도 그리웠다. 생각이 생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자 자꾸만 '죽음'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해 수없이 마음을 다잡아야 하는 낮과 밤이 지나갔다. 불면의 밤들, 그 속에서 나는 <I Love 수지>를 듣기 위해 엘피 플레이어 앞에 앉아 바늘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어렸던 나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이 왔다. 수지가 슬퍼했던 이유를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01 (2).png




울며불며 홀로 힘든 순간들을 어찌어찌 이겨내는 날들 속에서, 나는 조용필의 <꿈>을 내 안에서 다시 탄생시켰다. 이전에는 뜻도 잘 모르며 따라 부르던 조용필의 <꿈>의 가사가 내 안에 사무치며 나만의 노래가 되어갔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도시를 찾아서 떠나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불빛으로 반짝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아름다운 서울의 불빛은 내게,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냉기가 흐르는 냉동고의 불빛이었다. 도시의 온기 없는 불빛을 홀로 맞서기 힘든 날이면, 조용필의 <꿈>을 들으며 학교 교정을 산책하곤 했다.


감미로운 조용필의 목소리가 <꿈>에서 만큼은 다르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듯 거칠고, 대도시의 갈라진 콘크리트 벽처럼 건조하다. 그 목소리는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먼저 겪어 본 선배가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해 주는 듯했다. '떠남을 견디는 건, 힘든 일이란다. 너만 힘든 것이 아니야.' 그 목소리가 나를 죽음을 생각하는 그 순간 수없이 붙잡아 주었다.


그랬다. 어릴 때 동경했던 '떠남'의 결과는 내 예상 밖이었다. '떠남'은 '떠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떠나온 의미'를 완성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떠날 때는 알지 못했다. '떠나온 의미'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떠남'의 상태를 홀로 견디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곤이지지(困而知之)'라고 했던가. 내 온몸으로 힘들게 경험해 본 뒤에야, '떠난다'는 의미가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3. 그리하여 떠남은 성장이다.



사실, '떠남'이란 공간에만 적용되는 의미는 아니다.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는 '공간'이 아닌, '존재'자체를 떠나는 상황이 등장한다. 북해에 사는 '곤'이라는 거대한 물고기가 물고기임을 버리고 '붕'이라는 거대한 새로 변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물고기가 갑자기 새로 변한다니, 이야기에는 아무런 맥락이 없다. 그저 때가 되어 변하고 자기가 가야 할 곳을 알아 스스로 찾아 떠나간다. '붕'이 향하는 '남명(南冥)', 즉 남쪽 바다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리 애써 가는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남쪽바다에는 '붕'을 살리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새로 변하는 이야기, 이는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 등장하는 '물화(物化)'라는 개념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물화'의 한자를 해석하자면 말 그대로 '존재의 변화'이다. 크게는 생사가 순환하는 순간이며, 인간사로 보면,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 결혼하여 부부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게 되는 순간이다.


일상의 작은 순간들도 물화가 된다. 새로운 습관을 가지게 되는 순간, 기존에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 가사를 문득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 이 순간들은 모두 기존의 나를 떠나 새로운 나를 맞이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물화의 순간들이다.


인간에게 있어, '물화'란 떠남으로 비롯된다. 공간, 시간, 관계 등 그 무엇이든 간에 떠남은 변화의 신호탄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붕'이 '남쪽바다'에 도달하기 위해 수없이 날갯짓을 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야, 기존의 나를 철저히 떠나 새로이 성숙한 나를 맞이할 수 있다.


<I Love 수지>에서 출발하여 <꿈>으로 연결되는 조용필의 이야기에는 이 '물화의 시간(物化의 時間)'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우리는 모두 '떠남'을 동경하여 나만의 화려한 도시를 향해 떠난다. 그러나 '이곳, 고향'을 그리워하며 초라한 골목에서 홀로 눈물짓는다. 이 슬프고 고된 일상을, 우리는 홀로 눈을 감고 견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리고 나면, 우리는 붕새가 드디어 '남쪽바다'에 이르듯, 드디어 '꿈꾸던' 그 무엇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물화'는, 생(生)의 본능이자 내 안에 숨겨진 삶의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돌이켜보면, 어렸던 내가 그토록 어딘가로 '떠남'을 갈구하는 것은 성숙을 위한 본능의 발동이었던 듯하다. 진정 존재의 성장은, 각 존재마다 성장에 대한 염원을 동력 삼아 '떠남'을 실행하는 데서 시작된다. '물화의 시간', 탈피로 인한 고통을 감내하는 시간이 없다면 성장도 멈춘다. 그러므로 성장을 염원할수록 우리는, 삶을 관통하는 내내 고통을 감내하게 되는 것이다.


'떠남'으로 인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떠남'으로 인해 나는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는 성장을 갈구하는 생의 본능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떠남'을 시도한다. 이제는 그 '떠남'이 아주 거창할 필요가 없다. 이제는 예전처럼 극단적인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아주 조그마한 변화도 이제 내게는 '물화'이며 '유의미'하다 생각할 수 있는 성숙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하여, 각자 '물화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성장하는 존재들과 위로의 노래를 함께 듣고 싶다. 물화의 시간을 견뎌낸 이들의 수많은 위로가 우리 곁에 있음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와 당신의 오늘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자기 만의 '남명'으로, 각자의 '먼 곳'이자 '꿈'을 향해 조금씩 꿈틀대는 시간이 되길 소원한다.





조용필 <I Love 수지(작곡 조용필/조수지, 작사 양인자)>


기차를 보면 떠나가고 싶어 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갈 곳도 없는데 자꾸만 보채던 그 소녀를 나는 알아요

구름을 보면 눈물이 난다 하던 한 소녀가 있었죠

먼 곳이라 부르는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에 가고

싶어 했었죠 좋아하는 인형이랑 강아지도 모두 여기

있는데 I love 수지 이제는 먼 곳에서 이곳을 그리워

하면서 울고 있구나 I love 수지 자장가를 불러주마

I love 수지


조용필 <꿈(작곡 조용필, 작사 조용필)>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keyword
이전 07화못 찾겠다 꾀꼬리, 생(生)의 진리를 찾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