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 못 찾겠다 꾀꼬리
길을 걷다가 가끔 골목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면, 소박하고 싱그러웠던 호박꽃 향기도 동시에 떠오른다. 어릴 적 살았던 곳은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주택가인지라 주택 사이사이에 빈 집터가 있었고, 질긴 생명력으로 스스로 잘 자라나는 호박의 특성 때문인 듯 공터마다 유독 호박이 심겨있었다.
그리하여 그 당시의 내 계절은 호박밭이 변하며 함께 변하였다. 호박꽃이 피고 지며 호박이 열리는 때, 호박을 다 따먹은 뒤의 황량한 공터인 때, 그 공터에 눈이 쌓이는 때. 나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은 호박의 삶과 죽음이었다. 특히 아이들이 밖에서 뛰놀 수 있는 계절엔 커다란 호박꽃도 다투어 피었고, 호박도 주렁주렁 열려 그 향기가 진동했다. 그 호박꽃 어미에게서 태어난 호박 열매는 어미와 같은 호박꽃 내음이 났다. 그 싱그러운 풋내는 마치 아이들의 향기인양, 그렇게 뛰노는 아이들 주변을 떠돌았다.
나는 당시 초등학교 1, 2학년쯤으로, 학교가 끝나 집으로 돌아오면 현관에 선채로 가방을 냅다 집안으로 던지고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골목에서 놀 욕심에 학교에서 최대한 서둘러 돌아오는데도, 다른 아이들은 무슨 수로 이리들 빨리 도착하는지, 내가 골목에 나갈 즈음이면 골목엔 벌써들 놀이를 시작한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가득했다.
골목길에서는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술래잡기, 공기놀이, 소꿉놀이 등등 다양한 놀이가 다채롭게 펼쳐져 마음이 동하는 곳 어디든 끼어들 수 있었다. 어느 날은 동네 언니에게 가위로 종이 인형을 오려내는 법을 배우다가 종이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아 하루 종일 가위질만 했다. 또 어떤 날은 동글하니 한 손에 들어오는 돌멩이를 찾아 공기놀이를 하다가 손날이 모래바닥에 수없이 긁혀 피가 맺히기도 했다. 호박꽃이 피고 지고 호박이 열리는 사이, 골목길에서 살던 우리도 그렇게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호박이 맺히던 계절, 그 어느 날이 기억난다. 여느 때처럼 나는 골목에서 고무줄놀이에 열중하여 신이 났다. 해가 길어진 때라, 늦은 시각에도 날이 훤하여 아이들은 저녁식사 시간을 넘긴 줄도 모르고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덕분에 이 계절엔 골목을 향해 아이들을 앙칼지게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가 주택가 담장 너머로 수없이 쩌렁쩌렁했고, 이름이 불린 아이들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한 명씩 둘 씩 대문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한창 재미나던 골목 놀이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수록 흥이 떨어지고 파장분위기가 되어갔다. 서먹한 분위기에, 이름이 불리지 않은 아이들까지 모두 흩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골목 친구와 헤어지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과이자 평소와 같은 풍경인데도, 호박이 맺히던 그 어느 날은, 내 마음이 너무나도 아쉬워 쉽게 골목을 떠나지 못했다.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골목엔 이제 막 저물기 시작한 붉은 석양빛이 눈부셨다. 골목참에 홀로 서서 어느 주택 뒤로 숨어 들어가는 석양의 마지막 빛을, 몸부림치듯 찬란하게 사라지는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어스름이 깔리는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순식간에 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어둠을 바라보며 나는 소름 돋는 고독을 느꼈다. 호박꽃도 지고 석양도 저물어가던 그 어느 평범한 날,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것을 몸서리치게 느끼는, 그런 순간이 있었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
하나둘 아이들 돌아가버리고 교회당 지붕 위로
저 달이 떠오를 때 까맣게 키가 큰 전봇대에 기대앉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그렇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이 바로 이것이리라. 마치 생(生)의 근원으로 돌아가듯이, 골목 위 아이들은 거부할 수 없는 어머니의 부름에 집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소리 내어 외쳐도 이미 자신의 모태로 돌아간 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나는 홀로 어둠을 맞이한다.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골목에 서서 나 홀로 바라본 석양과 어둠의 이미지는 마치 죽음의 은유와 같았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홀로 견디며 서 있는 이 순간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었다. 수없이 뛰놀며 즐거움 가득했던 그 자리에서 문득 고통을 느끼는 순간, 삶이라는 것은 나의 즐거운 상상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삶은, 그 순간 나에게 등을 돌렸고, 나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허공에 내리 꽂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손을 꼭 붙들어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길이 있다. 그것이 바로 생(生)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밀려오는 두려움과 막막함. 그러한 괴로움에 목이 메이며 나는 문득 느꼈다. 인간은 '죽음'을 인식하였을 때, 비로소 생(生)의 본질을 똑바로 바라보게 되고 살고자 한다는 것을 말이다.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그렇게 보면 죽음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이어령의 마지막 인터뷰』 에서 이어령은 죽음을 이렇게 묘사하였다. 이 문장을 책에서 발견한 날, 나는 하루 종일 그 문장만 생각했다. 두 사람 이상의 생각의 결이 이렇게 같을 수 있다면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기억 속에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의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나도 이제는 가사 속 화자와 같이 더 이상 골목에서 "00야! 놀자!" 하며 친구들을 부르던 나이는 지나고 말았다. 그러나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를 듣노라면, 더더욱 바로 그날의 기억이 선명히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기억은 자꾸만 내게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숙제를 내민다.
나는 지금 친구들이 사라진 골목에 서서 '남은 삶'을 잘 살아내는 법. 그리하여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하는 법을 찾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고민해 보아도 모르겠다. 조용필의 <못 찾겠다 꾀꼬리> 속의 화자가 어른이 된 뒤에도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애쓰지만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나와 닮았다.
어쩌면 삶은, 실제 내가 행하는 실체적인 행위 속에서 구성되므로 오로지 '생각'만으로는 찾을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혹은 해답이 없는 해답을 찾기 위해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는 알겠다. 골목에서 신나게 놀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다고 부르는 엄마의 곁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이라면, 골목에서 신나게 놀았던 그 시간들은 생(生)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골목길에서 놀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삶을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가만히 골목길에서 신나게 놀았던 기억을 돌이켜본다. 어렸던 내 마음을 돌이켜본다. 당시에 느꼈던 매일의 열정은 내 마음에서 시작되어 실제 즐거움으로 연결되었다. 나의 내면을 충만하게 해 줄 그 무엇인가는 바로 내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즉 삶을 살아가는 에너지는 나로부터 발화되는 것이다.
생(生)은 소멸을 통해 또 다른 생(生)을 준비한다. 호박꽃이 지고 나서야 맛 좋은 호박이 열린다. 해는 저물어야 다음 날 다시 떠오를 수 있다. 나의 매일은 어제의 소멸에 의해 생겨나고, 나의 긍정은 어제의 나의 부정을 죽이며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생(生)의 진리를 찾아 조금씩 못난 나를 보내고 밝은 나를 맞이하다 보면, 나를 조금씩 좀먹던 내 안의 사특함도 언젠가는 생(生)의 에너지로 채워지리라.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는 '못 찾겠다 꾀꼬리'를 부를지언정 그날 받은 숙제의 해답을 여전히 찾고 있다. 언젠가는 찾아질, 아니, 언젠가는 내게 찾아올, '나를 살게 할 진실'을 기다린다.
못 찾겠다 꾀꼬리 (작곡 조용필 작사 김순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가 숨어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지
하나 둘 아이들은 돌아가 버리고
교회당 지붕 위로 저 달이 떠올 때
까맣게 키가 큰 전봇대에 기대앉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
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
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
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얘들아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언제나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꾀꼬리
나는야 술래 못 찾겠다
-『조용필 4집 못 찾겠다 꾀꼬리』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