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쓰조앤 Aug 27. 2021

콩나물에 대한 예의 / 복효근


콩나물을 다듬는답시고

아무래도 나는 뿌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무슨 알량한 휴머니즘이냐고

누가 핀잔한대도

콩나물도 근본은 있어야지 않느냐

그 위를 향한 발돋움의 흔적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아무래도 나는

콩나물 대가리를 자르진 못하겠다

죄 없는 콩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너와 나 감당 못할

결핍과 슬픔과 욕망으로 부풀은 머리 쥐어뜯으며

캄캄하게 울어본 날들이 있잖느냐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넝마에게도 예의는 차리겠다

그래, 나는 콩나물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겨우 콩나물의 모자나 벗겨주는 것이다










나의 서체는 언제... 시루에 부은 물은 콩들을 지나 이내 밑으로 떨어진다. 허무하게 빨리. 그러는 사이  콩의 모자는 작아지고 콩.나물은 열심으로 자란다.  



브런치에 글을 답시고 

미뤄놓았던 청소를

아무래도 이제 좀 해야겠다

이제 와 무슨 알량한 주부 심성이냐고

누가 핀잔하지 않아도

나도 내 역할이란 게 있어야지 않느냐

집안 어지러워져 가는 꼴을 더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하지는 못하겠다


그렇기는 하나

아무래도 나는

브런치에 글쓰기를 그만두진 못하겠다

그러나,

글을 써보겠다는 첫 마음을 서서히 어둠 속에 가두고

조회 수에 희비 하며 나의 본심(本心)에 물 먹인 죄도 죄려니와

감당 안 되는

나의 숨은 결핍과 가려진 슬픔 애써 숨겨둔 욕망

브런치와 다음 메인에 어떻게 해야 내 글이 뜰지

부풀은 머리 쥐어뜯으며

혹시, 혹시 하며

캄캄하게 가슴 저려본 날들이 있지 않았느냐


그러함에도 나는

아무래도 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자르진 못하겠다

지금 와 무슨 넝마 같은 낭만이냐 하겠지만

난 '시'에게 이제 예의를 차리겠다

나의 낭만에게도 '예의'를 차리겠다

그래, 이 알량하고 빈약하고 속된 나에게

해탈을 돕는 마음으로

이제나마 내 머리 위에 헛바람으로 들어와

무겁게 덧씌운 모자 좀 벗겨주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오이와 나비와 벌과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