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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주홍 Mar 19. 2023

오키나와 국제거리, 젊은이들 헌팅의 성지

오키나와 여행기 9


'젊은이들의 성지'라고 써놓고 보니, 꼭 내가 늙어버린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헌팅을 하며 놀 수 없는 유부녀라는 의미에서 '젊은이'를 타자화 해 보았는데… 그럼 늙은이가 돼버린 게 맞나? ㅎㅎ

오키나와 최대 번화가, 나하의 국제거리는 내게 그런 곳으로 다가왔다.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나하까지는 차로 3시간 정도.

장시간 운전으로 생긴 피로를 풀러 먼저 '이치란'에 들렀다.

코로나 기간 일본 여행을 못 가 아쉬울 때마다 특히나 이 이치란의 맛이 그리웠더랬다.


오키나와 이치란의 맛은 어떨까. 도쿄, 오사카 지점의 맛과 비슷할까.



코로나 시대를 예상이라도 한 건지 '혼밥'에 최적화된 이치란의 주문 시스템.

자판기에서 버튼을 눌러 식권을 받고, 空 이라 표시된 빈자리를 스스로 찾아 앉아, 직원에게 식권을 건네 주문을 한다.


왠지 모르게 칸막이 옆사람과도 떠들면 안 될 것만 같은 독서실과 같은 1인석 구조.

맛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이런 조용한 분위기 구축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파는 다 넣고 계란 하나 추가, 그래도 오키나와니 오리온 생맥으로 주문.


캬. 약간 느끼하다 싶을 때 생맥을 목구멍으로 넘겨주면 시원히 풀리는 것이 내가 아는 이치란, 바로 그 맛이다. 

지점마다 맛이 비슷하네. 이치란 너, 라면계의 스타벅스로 인정!


만족감에 배를 통통 두드리며 본격적인 국제거리 탐방에 나섰다.



체인점을 다녀왔으니 이제 나하에서만 맛볼 수 있는 현지음식점에 가볼까.

시장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연초 연휴 때여서 그랬는지 시장 통로에 위치한 음식점이 대부분 문을 닫았더랬다. 밤 10시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창 장사할 시간 아닌가?

인적이 드물어서 약간 무.. 무서운 느낌까지 들었다. 영화를 보면 꼭 이런 데서 칼을 쑤시고.. 그러던데.


블로그에서 '현지인 맛집'으로 검색해 골목골목을 찾아 들어간 집은 만석. 

그리하야 이번엔 20여 개 이자카야가 모여있다고 하는 포장마차거리로 향했다.


https://www.google.com/maps/place/26%C2%B013'00.2%22N+127%C2%B041'25.4%22E/@26.216726,127.690382,17z/data=!3m1!4b1!4m4!3m3!8m2!3d26.216726!4d127.690382


아하, 나하사람들 다 여기에 모여있었구먼.

'포장마차 마을'이라는 이름처럼 20여 개 되는 포장마차들이 모인 이곳은 복작복작하니 대다수 집이 만석이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알록달록 '오리온 전등' 밑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에 나까지 설레는 기분이었다.


어딜 가든 맛이 다 비슷할 것 같아서 대충 빈자리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친절하신 여자 사장님이 계신 곳이었다.


방금 라면을 먹긴 했는데 왜 또 출출한 것 같지?^^ 

안주를 3개나 시켰다.


친절한 사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요즘 가까워진 한일관계를 부쩍 느끼는 것이 바로 유튜브인데,

우리 커플은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을 즐겨보곤 한다.


특히 '술잘알' 마츠다 부장님의 술 마시는 순서는 생맥-하이볼-니혼슈라고. 이런 건 또 본받아줘야지. 


조금 전 라면과 함께 생맥을 마셨으니 

이곳에서는 하이볼을 마시고 그다음엔 오키나와 소주, 아와모리 순서로 주문했다.


아와모리는 오키나와 누룩을 발효시켜 만든 증류수라고 한다. 

사케처럼 깔끔한 뒷맛이, 아주 아주 맛있었다.

 


음식을 두고는 꼭 요즘 핫한 '일본인' 다나카에 빙의돼서 젓가락을 빙빙 돌리며 주문을 걸었다.


'오이시쿠나레, 오이시쿠나레, 모에모에 큥!'

일본인들이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하니 너무 웃겨서 깔깔깔 배가 찢어져라 웃었다.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와서 저기 영동시장 같은 데서 떡볶이 앞에 두고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요잇요잇 짠" 뭐 이런 말하는 거 아니냐며.



포장마차 거리의 통로는 매우 비좁아 오빠 뒤로 계속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솔직히 편안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현지 분위기를 느끼기엔 그만이었다.


다 단골손님인 건지 아니면 그냥 친화력이 좋은 건지, 사장님은 지나다니는 사람과 연신 인사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사진을 찍었다. 까막귀는 알아들을 수는 없었어도 덩달아 신나 같이 인사를 하곤 했다.


또 행인들 중에는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화장과 행색으로 봤을 때 LGBT 같았는데, 오키나와에 이들이 모인 특별한 이유라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포장마차 분위기를 한껏 즐기고 나오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 노란 전등아래 그마저도 운치 있게 느껴지더라.


써놓고 보니 좀 웃긴데.. (그때는 몰랐음) 


우리는 또 3차를 갔다. ^^;

당일 북부에서 오는 피곤한 일정을 소화했었는데 체력이 남아돌았나 보다.


거리에서는 젊은이들의 헌팅이 한창이었는데, 어머나 한국 방식하고 똑같더라. 


일단 남성 두세 명이 여성들의 뒤를 쫓아가 실없는 농담을 건넨다.

여성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계속 웃는, 싫지만은 않은 표정. 

그들은 이윽고 한 무리가 되어 어디론가 떠났다.


이구이구, 좋을 때네.

이제 막 결혼한 아줌니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힐끔힐끔 구경했다.

이내 비가 그칠 때쯤 눈앞의 이자카야로 또 들어갔다.



미역과 같은 기본안주도, 평소에는 잘 안 먹지만 배가 불러서 시킨 야채볶음도 짭짤하니 제격이었다.


이곳의 잔에는 삿포로 랜드마크인 아저씨 '니카상'이 그려져 있더라.

야채볶음을 두고 또 '오이시쿠나레' 주문을 걸며 깔깔 웃었다.


나 아무래도 오키나와 체질인가. 평소 술을 잘 못하는 편인데 이날은 꿀떡꿀떡 잘도 마셨다.


이 작은 섬나라에서 소중한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며 듣는 빗소리란.

YOUNG한 분위기에 한껏 들떠 끝까지 마신 포장마차 거리에서의 밤이 이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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