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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심플 Jul 05. 2021

1)사쩜오춘기의 서막

남편이 물었다. "애들 키우고 뭐할래?"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가락이 바르르 떨렸다. 마른 침을 삼키는 동안 머릿속에 수많은 말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 나가겠다고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교통체증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욕이 먼저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애석하게도 아직, 착했다.


 단지 그 한 문장만으로 그리 화낼  이냐고 남편도 또 다른 누군가도 의아해 하겠지만, 아니. 나는 남편의 의도를 전혀 곡해하지 않았다.

 그의 의도는 확연했다. 우리가 나누던 대화의 문맥속에서 그의 의도는 빠져나갈 구멍없이 이기적이었다.


 그 무렵의 나는 삼십여년의 인생중 최대 암흑기를 이제 갓,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셋째아이가 두돌이 지날 무렵이었다.

셋째아이가 내 인생의 깜짝 선물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셋째아이 임신부터 두둘까지의 삼년이 내 인생의 암흑기였던 것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몸도 많이 망가져 있었고, 맘도 많이 피폐해져 있었다. 이제야 조금 희망이 보인다고. 그렇게 얘기했다. 조금 살것 같다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자기가 이런날이 올거라 하지 않았냐고. 자기도 "육아휴가"(라 쓰고 그냥휴가라 읽는다)쓰고 좀 쉬고 싶다고. 그런데 외벌이이니 부담스럽다고. 그 다음 대사였다. 애들 좀 더 키우면 뭐할거냐고. 그 다음은 더웃긴다. 젊을때 춤추는 거 좋아했었으니 댄스강사는 어떠냐고.


 말문이 막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어느 말 하나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의 종합세트 같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속으로 대꾸를 했다.


 이런 날이 오는 거 누가 모르냐? 결과야 어떻든 그 과정이 뭣같은건 안변하잖아?

 육아휴가를 왜 육아할때 안쓰고 육아 갓 끝나자마자 쓰는건데?

 첫아이 생기고 한사람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게 좋다고 일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한건 너잖아?

 춤추는거 좋아해서 강사될거 같으면, 음식 먹는거 좋아하면 맛평론가 되겠다?


 문제는, 이때도 나는 착했다. 아니, 답답했다. 그냥 허! 허! 하며 신박한 개소리에 감탄사만 날리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사쩜오춘기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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