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짐노페디
저에게는 올해 10살이 되는 아들 2호가 있습니다. 2호는 라면을 참 좋아해요. 사발면, 끓인 라면, 부숴먹는 라면, 뿌X뿌X 과자 등 라면 모양 비슷한 것들만 보면 눈과 콧구멍이 2배로 커집니다. 매일 라면을 먹고 싶어 하지만 그리 줄 수는 없어서 가~끔 보상의 의미로 먹게 한답니다.
학교에서 일찍 하교 한 어느 날, 그날은 며칠 동안 조르던 라면을 먹는 날이었습니다. 누나와 동생 없이 혼자서 호로록 짭짭 라면을 먹으면서 빙그레 웃으며 저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이런 게 행복이지, 이런 게 추억이지, 헤헤."
저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2호야, 이런 게 행복이라고? 행복이 뭔데?" 하며 물었더니
"응, 내가 좋아하는 걸 먹는 이 시간. 이런 게 행복이지~." 하며 웃는 게 아니겠어요?
"이런 게 행복이라서 좋겠다!! 엄마도 행복하고 싶다!"
저에게는 그냥 '라면을 먹는 행위'로 느껴질 뿐인데 아이에게는 '행복의 순간'이라니,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 '행복하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행복: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행복하다: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국어사전에 정의에 따르면 2호는 라면을 먹는 행위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꼈으니 행복하다고 말하는 게 본인에게는 찰떡같은 표현이겠지요?
저에게는 시시한 행위인 '라면을 먹는 일'이 아이에게는 왜 '행복'이었을까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어쩌면 저는 '행복'이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보통 우리는 이상적인 어떠한 순간들 가령, 내가 정말 갖고 싶어 했던 물건을 사는 순간, 그토록 고대했던 시험에 합격 한 나의 모습, 돈 많이 벌어서 돈 걱정 없이 사는 미래 등 이런 순간들을 떠올렸을 때 '행복하다'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서 현실에 살고 있는 어른들은 '행복',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점점 없어지는 거 같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그런 순간들은 몇 번 오지 않잖아요.
몇 번, 아니 어쩌면 평생 만나지도 못하는 그 순간들을 꿈꾸면서 장밋빛 미래만 기다리게 된다면 우리의 보통의 날들은 '회색빛'으로 분류되어 그저 그런 날들인 걸까요?
행복은 아주 작은 것들로부터- 샬롯 에이저는 일상에서 만나는 찰나의 순간들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보고 있자니 꼭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새벽에 달리는 미소, 느긋한 아침을 보내는 시간, 책에 집중하여 또 다른 세상에 있는 시간,
풀잎을 느끼는 손가락 사이사이의 감각들.
샬롯 에이저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림에 담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마음이 평안하고 쉬이 고요해지는 순간들.
생각해 보면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난 뒤, 아이들까지 잠들고 나면 저에게는 자유 시간이 주어집니다.
모든 일을 홀가분하게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포근하고 따듯한 침대에 누워 푹신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덮고 있을 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하루를 별 일 없이 잘 마무리했다는 안도감과 이 고요함을 아무도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자유로움에서 오는 행복.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들고 침대에 누워 Night-Playlist에 있는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을 재생합니다.
에릭 사티(1866년~1925년)는 프랑스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입니다.
'신고전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그는 정형화된 틀과 전통을 거부하며 간결한 표현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유년기에 어머니를 잃고 조부모님 밑에서 성장했는데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짙은 고독함은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사회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던 젊은이.
1888년에 작곡한 <3개의 짐노페디> 작품에서는 외로움, 단순함, 간결한 선율의 진행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짐노페디(Gymnopedies)'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소년들'이라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축제에서 소년들이 벌거벗고 추는 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곡을 들으면 그 당시의 춤추는 풍경이 그려진다기보다는 복잡하고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음악 그 자체 '단순함'을 추구하려고 했던 사티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티는 <가구 음악>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었는데 일상생활에서 그 자리에서 편안하게 있는 가구들처럼
음악 역시 항상 곁에 편안하게 공간 내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귀를 기울여 집중해서 듣는 음악이 아닌 일상과 함께 흘러가야 한다는 의미가 있지요. 요즘 들어 말하는 BGM이라고 표현하면 딱이겠죠?
https://youtu.be/pIbXrpy4 EHY? si=9 sXg4 oSll-RfNOC3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저 멀리 미래에 있는 일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기다림의 시간도 아니고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에 매여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땅을 밟고 있는 이 시간, 머물러 있는 현재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가끔은 지루하고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나의 시간들 속에서 내가 좋아하고 삶의 만족함을 느낄 수 있는 그 찰나의 시간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함께 모여 반짝이는 것처럼 행복한 찰나의 순간들이 우리의 삶을 더 반짝이게 만들어 줄 거예요.
아들 2호에게는 라면을 먹는 시간, 밖에서 자전거를 타며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그 시간들 말이에요.
[참고 자료]
샬롯 에이저: www.instagram.com/charlotte.ager
[참고 문헌]
더 클래식 셋: 말러에서 쇼스타코비치까지, 문학수 , 돌베개
클래식은 처음입니다만, 최영옥, 태림스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