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당신도 멈추기 힘들잖아요.
지민은 현재 열 살이다.
평일엔 영어 영상을 한 시간 반 시청하고, 숙제나, 공부 등 그날 해야 할 일을 다 끝냈을 때, 20~30분 정도 게임을 한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8시 반엔 누워서 나와 함께 잠자리 독서를 한 시간 정도하고 열 시 전에 잠에 든다. 주말엔 오전, 오후 나눠서 각각 한 시간 반 정도, 한국어 영상을 포함해서 원하는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오후 영상물 시청 시간에 원한다면 게임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게임은 2학년 2학기 즈음부터 시작했고 그전까진 전혀 하지 않았다.
게임을 제외하고, 이렇게 정해진 시각에 정해진 시간 동안 영상물을 시청하는 것은 정확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년도 12월부터였다.
영유아 시절까지 평일엔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는 것이 나름대로의 원칙이었지만, 내 몸이 너무 아프거나 극도로 피곤한 날엔 조금씩 보도록 했다. (아이의 뇌 발달도 중요하지만 엄마에게 육아가 고문 같이 느껴져선 안되기에… 물론 시간제한을 뒀다) 그리고 주말엔 엄마 아빠와 함께 재미있는 영상물을 시청했다.
‘어? 우리 애는 훨씬 덜 보는데?’
라는 생각이 든다면 축하한다. 이 글은 조절되지 않는 미디어 사용으로 분투하고 있는 가정, 혹은 이제 막 미디어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조절 습관을 들여야 할지 모르는 가정을 위함이니 패스하시길 바란다.
아무튼, 이렇게 루틴화 되기까지
아이와 갈등이 전혀 없었을까? 절대 아니다.
영상을 시청하기 전에, 혹은 게임을 하기 전에 미리 규칙을 서로 공유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엄마의 말하는 태도와 아이의 듣는 태도이다.
많은 경우 아이가 이미 미디어를 사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몹시 신나 있는) 뒤통수나 정수리에 대고 “한 시간만 봐! “라고 외친다. 이건 전혀 소용이 없다. 아이들에게 그 말이 닿지 않는다.
반드시 ‘잠깐 멈춤’ 상태에서 서로 눈을 마주하고 약속을 정한다. 나의 경우엔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딱 한 시간 반 동안만 보는 거야.
너무 오래 보면 눈이 나빠지거나 머리가 멍-해져.
엄마는 그 부분이 좀 걱정돼.
시간 지키자.
영유아 아이들은 못 알아듣지 않을까?
알아듣는다.
언어로 구체적인 의미를 파악하진 못해도, 엄마가 진지한 태도로 말하는 그 뉘앙스를 느끼고, 눈빛을 읽으면서
‘아, 엄마가 지금 뭔가 중요한 말을 하고 있구나.’
‘엄마가 나에게 주의를 주고 있구나.’
라고 온몸으로 감각한다.
눈을 마주 하고 차분하게 또박또박 알려줘라.
그리고 여기서의 목적은 “아이가 올바른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돕자.”이지,
“시간을 오버해서 볼 경우 엄히 다스리겠다.”가 아니다.
혹시 내 눈에 힘이 들어가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아이에게 경고투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를 알아차리고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하라.
아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한 번 영상을 보기 시작하거나, 게임을 시작하면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기 10분 전 즈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 어떤 애니메이션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엄마와 약속 시간은 10분 남았지만, 영상이 다 끝나기까진 20분 정도가 남은 상황이다. 그럴 땐 십 분 정도는 허용해 주자. 유연한 통제를 하자는 것이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당신은 한창 재미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다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아무런 미련 없이 TV를 꺼버릴 수 있는가.
나는 못한다.
이런 경우에도 잠심 멈춤 하고, 이렇게 말해준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끄기 아쉽겠네? 딱 십 분만 더 보고 끄자.
그 이상은 안 되는 거야.
약속!
엄마가 먼저 자신의 처지를 살펴주고 약간의 느슨함을 허용해 주었기 때문에 더 우호적인 상태에서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2차로 약속한 십 분 후엔 정말 꺼야 한다. 계속해서 십 분씩 늘리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또 한 가지, 약속 시간이 다가올 무렵 아이가 보고 있는 영상이 다 끝나기까지 30분 정도가 더 남았다? 그렇게까지 허용하면 좋은 습관을 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꿀팁이라면 꿀팁이다.
여기서의 ‘공’은 농구공, 축구공이 아니다. ‘공을 쌓다.’ ‘공을 세우다’ 할 때의 ‘공’이다.
아이가 직접 버튼을 눌러서 종료시킬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했을 때 찬사를 아끼지 말라는 것이다.
엄마와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면 아이는 물론 아쉬워할 것이다. 당연히 더 보고 싶지 않겠는가? 아주 강력한 저항을 맞닥뜨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꼴을 마주했을 때 엄마 안에서도 슬슬 분노가 꿈틀거릴 수 있다.
‘아까 분명히 약속했는데, 얘가 또 배신 때리네?‘
괘씸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예전에 스위트홈 시즌 1이 넷플릭스에 처음 나왔을 때 남편과, “저거 뭐지? 재밌을까? 1편만 보고 자자.” 하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우린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흥분의 도가니로 연달아 네댓 편을 보고, 새벽 5시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피곤해서 죽는 줄 알았다.
다들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내가 지금 무척 재미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걸 중도에 끊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 하물며 아이에겐 얼마나 힘들까?
아이가 세차게 저항할 때, 그 마음을 충분히 인정해 줘라. 그렇지만 이쯤에서 종료버튼을 누르는 건 꼭 해내야 하는 일이고, 넌 반드시 할 수 있다고 분명히 이야기해 줘라. 그러면서 아이 손으로 직접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권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냈을 때,
우와! 이건 어른들도 힘든 일이야!
근데 우리 뿅뿅이가 해냈네? 최고!
엄마는 우리 뿅뿅이가 해낼 줄 알았어! 잘했어!
이때 아이의 표정을 놓치지 말라!
자기 효능감이 급상승한, 극도로 귀여운 표정을 보게 될 것이다.
추가사항으로 ‘환경 설정’에 관한 부분 두 가지를 더 안내하겠다.
하나는, 미디어 노출 시간 외에는 그와 관련한 기기가 아예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핸드폰이 앞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보게 되지 않는가? 우리 집 같은 경우엔 TV를 구석방으로 넣었다. 다른 전자 기기 또한 평소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보관해 뒀다가 사용 시에만 꺼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자기 전에도 온 가족 모두 휴대폰을 거실 한편의 충전해 두는 곳에 모아 두고 들어간다. 시야에서 아예 사라지도록 하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두 번 째는 구매하길 매우 잘했다고 생각하는 타이머이다. 인터넷에 ‘구글 타이머’, ‘타임 타이머‘라고 검색하면 나올 것이다.
1분 간격으로 시간을 설정하고, 시간이 줄어들수록 컬러 부분이 점점 줄어들어서 시계를 볼 줄 모르는 어린아이들도 직관적으로 시간이 줄어들고 있구나, 어느 정도 남았구나, 하는 걸 알아볼 수 있다. 강추한다.
*
3단계로 정리해서 말한 것처럼 그 과정이 간단하고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수월하지만, 어느 날은 너무도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고, 어떨 땐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분노의 힘이 너무 세서 결국 버럭하고 마는 날도 있을 것이다.
육아는 장기전이다. 오은영 박사도 말했다.
새털 같이 많은 날들이 있고,
우리는 아이에게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도 더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가르쳐야 한다.
하아…….
오늘도 애쓴 당신의 육아가 1인치라도 수월해지길 기원한다.
도움되는 대목에 귀를 기울이고,
나머지는 무시하세요.
-앨리스 워커-
당신만의 육아 방식을 존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