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미 May 16. 2024

시작이 두려울 때 웜업(Warm up)하기

에너지 전환 (feat. 걷기, 요가, 소문내기)


몸 깨우기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 몸이 아프지 않아 더 이상 눕고 싶지 않은 상태인 것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몸과 마음은 연결돼 있기에 내적 동기를 더 강하게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몸을 먼저 깨워야 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들,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았다. 걷기와 요가였다. 만물이 깨어나는 봄이었으므로 몸을 깨우기에도 적절했다.


지민을 유치원에 보낸 후 곧장 공원으로 갔다. 20대 때부터 아이가 태어나기 하루 전까지, 나는 날마다 걸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오면  모자를 쓰고, 황사가 심한 날엔 마스크를 쓰고 걸었다. 기분 좋은 날엔 <Crazy in love>를 들으면서 ‘나는 비욘세’ 라는 자기 암시를 하며 걸었고, 슬픈 날엔 울면서, 화가 많이 났을 땐 더 성큼성큼 발밑의 분노를 짖밟듯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을 꽉 채워 걷다 보면 내 안의 모든 불필요한 것들이 사그라들고, 다시 생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낳곤 혼자 걸을 새가 없었다. 바깥세상을 처음 탐구하는 귀여운 아이와 보폭을 맞추는 것 또한 행복했지만, 정면 먼 곳에 시선을 두고 홀로 자유롭게 바람을 가르며 걷고 싶기도 했다. 다시 그렇게 했을 때, 마치 날아가는 것 같았다. 바람에 살랑이는 연둣빛 이파리와 노란색 개나리 꽃잎들이 왜 이제 나왔냐며 반겨주는 것 같았다. 몸에서 후끈 열이 오르고, 등이 땀으로 젖었다. 온종일 누군가를 돌보며 종종걸음 치다 흘리는 진땀이 아니라 나만을 위한 땀이었다.


집에 돌아와 바로 거실에 매트를 깔았다. 두 엉덩뼈에서 매트 쪽으로 마치 뿌리를 뻗어 내리듯 안정감 있게 앉았다. 척추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뻗어 정수리로 이어지는 상상을 하고, 어깨에 힘을 뺀 후 양 손바닥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눈을 감았다. 숨을 쉬었다. 숨이 코 끝을 스치고 들어와 가슴을 채우고, 복부, 그리고 내 몸 전체를 채웠다. 다시, 복부 가장 아래쪽에서부터 천천히 숨을 뱉으며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 경직돼 있던 부분들의 긴장을 한 번 더 놓아주었다. 일순간 눈꺼풀이 뜨거워졌다. 당황했다. 하지만 곧 내버려 두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요가는 언제나 몸속의 불필요한 찌꺼기들을 흘려보내듯, 마음속 잊혔던 오래된 응어리나 슬픔, 분노들을 함께 놓아주곤 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7년의 세월 동안 영문도 모르고 고통에 떨며 아기를 돌본 시간들이 빛바랜 필름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두 시간가량 요가 수련을 했다. 아주 오래간만에 오롯이 내 몸과 마음을 돌봤다.




소문내기


몸이 가벼워지자 자연스레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특히 내가 아플 때 진심으로 걱정해 줬던 친구들에게 눈에 띄게 팔팔해진 근황을 전하고 싶었다.

한 무리는 10대, 한 무리는 20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인데 그들 모두 나를 보자마자 내 안색을 뚫어져라 살피더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얼굴이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몸은 좀 어때?”


회심의 미소를 짓고 답했다.


“완전 좋아.”


신묘했던 그날에 관한 썰을 풀어놨다. 반응은 역시 폭발적이었다. 만나면 늘 파리하고 혈색 없는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출입구에서 걸어올 때부터 20대 시절의 활력 있고 밝았던 내가 걸어오는 것 같아서 놀랐다는 것이다. 다시 연극을 시작하려 한다는 말에 모두 한마음으로 기뻐해줬다.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으니 마치 재탄생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 무슨 일이든 다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비전에 관한 ‘소문내기’를 할 때에는 세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 번째, 사랑하는 이들이 나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지지는 그 자체만으로 버팀목이 돼 주고, 자존감을 상승시킨다.


“축하해! 예전부터 네가 무대에 선 모습이 그렇게 멋있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더라! 다시 시작해도 넌 잘 해낼 거야!”

“다른 것 보다도 네가 건강해져서 정말 기뻐. 이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파이팅!”

“나중에 공연하면 꼭 이야기해 줘. 꽃다발 사들고 갈게. 플래카드라도 만들어 갈까?”

“40이면 새롭게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지!”


이런 전폭적 지지는 후에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러 다니며 스스로가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주었다.


두 번째, 스스로 ‘이미 그 상태가 된 것처럼’ 믿게 만든다.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 혹은 비전을 바깥 세상을 향해 외치면 안팎의 에너지가 변화하는 걸 느낄 수 있다. 특히 나를 진정으로 아껴주는 친구들의 경우 내가 이미 배우가 돼서 다시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대해줬고, 구체적인 계획을 물어봐줄 때부터 이미 변화된 삶이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방 안에서 홀로 꿈에 대해 읊조릴 때와 타인에게 공표했을 때에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에도 큰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쉽게 포기할 수 있다. 더 나은 시도를 위한 ‘중단’일 수 있으므로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이렇게 ‘방구석 홀로 다짐’을 하고 포기를 반복하는 경우 잦은 포기를 하는 것에 무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 지나면 결국 이뤄낸 것은 하나도 없게 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 자신이 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내 소중한 꿈에 대한 책임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책임감이 가만히 앉아 꿈만 꾸고 있던 상태에서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뒤에서 불어오는 순풍의 역할을 해준다.


세 번째, 앞선 두 가지의 긍정적 피드백과 상반된 효과로, 현재 가지고 있는 의지를 꺾으려는 부정적 피드백으로부터 기인한다. 이런 경우엔 오히려 의지를 더 불타오르게 하며 목표를 공고히 하는데 일조한다.

다시 연극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고 십 수년 전 함께 연극을 했던, 지금도 틈틈이 활동하거나 활발히 활동 중인 지인들에게 연락을 했다. 대여섯 명 중 서너 명은 회의적인 반응이었다.


“연극하지 마. 지금 연극판은 거지 같아. 영화 해, 영화. 응?”
(참고로 연극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또한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아……. 하려고? 굳이?”

“이제 와서 다시 시작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지.”

“푸하하하하하하!” (이 웃음의 의미는 아직도 모르겠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이니 다시 연극을 시작할 수 있는 통로를 모색할 수 있는 작은 조언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 기대를 접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내 안에서 7년 간 잠자고 있던 오기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그 세계를 향해 내가 직접 걸어 들어가야 할 때였다.











이전 04화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