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보러 갈래! 엄마 공연!”
SNS에서 공연 관련 계정을 닥치는 대로 팔로우했다. 느닷없이 연락해도 어색해하지 않을 소수의 연극계 지인들에게 안부 메시지를 전하고 좋은 공연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일단은 공연부터 봐야 했다. 어떤 장르의 예술이든 그 시대상을 담고 있기에 공연의 소재, 연출, 무대, 연기의 스타일 등이 변모하기 마련이다. 8년 간 업데이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공연할 무대를 찾는 일이 아니라 현재 공연되는 작품들의 트렌드를 접하고 과거 경험치를 담고 있는 내 몸의 감각과 만나게 하는 일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지인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묵직한 긴장감이 가슴을 눌렀다. 시작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설레는 표정의 사람들로 로비가 붐볐다. 마치 내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웅성거림인 듯, 묵직했던 가슴이 점점 뻐근해지면서 흥분 상태에 가까워졌다. 그와 동시에 묘한 질투심이 고개를 들었다.
로비를 가득 채운 관객들은 그 순간 분장실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배우들을 위해 존재했다.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배우도 아니었고, 순수한 의미의 관객도 아니었다. 그저 주변인 같았다. 외로움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을 땐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이후 다른 공연들을 보러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내 공연도 아니면서 공연 시작 전마다 주책맞게 심장이 떨렸다. 끝난 후에는 배우로 참여했던 지인이 분장실에서 나오길 기다리며 다른 관객들 틈에서 혹여나 과거에 함께 작업했던 사람과 마주칠까 봐 연신 휴대폰에 코를 박고 뭔가 열심히 검색하는 체했다.
그때 내 안에는 두 명의 자아가 있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한 생명을 돌보는 위대한 여정에 기꺼이 참여한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느끼는 자아와, 7년 간 개인적 커리어는 아무것도 이룬 바 없이 그저 나이만 많아졌다며 스스로를 작고 초라하게 여기는 자아. 공연장에 갈 때면 두 번째 ‘쭈그리 자아’가 자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피해 구석으로만 숨어들게 만들었다.
이런 상태는 1년 가까이 지속됐다. 집 밖은 위험했다.
공연장에 한 번 다녀오면 그 후 몇 주는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삽질을 반복됐다.
새벽 두 시까지 넋 놓고 벽돌 깨기 휴대폰 게임,
미드 ‘워킹데드’ 하루 종일 정주행,
딱히 피곤하지도 않으면서 눕기,
육퇴 후 습관적으로 주량 이상 마시는 맥주,
입지도 않을 옷 쇼핑,
바르지도 않을 색조 화장품 쇼핑,
틈만 나면 넋 놓고 빠져드는 릴스와 숏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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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기 바빴다.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것도 허황된 꿈이 아니었을까 의심했다.
그날도 괜히 이불속으로 들어가 피곤하다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었다. 그때 거실에서 남편과 아이가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지민아, 엄마는 지민이가 태어나기 전에 배우였어. 엄청 큰 공연장에서 공연했어.”
“엄마가? 아빠도 봤어?”
“그럼! 엄마 이제 다시 배우 할 거야. 그럼 지민이도 엄마 공연 볼 수 있겠다. 좋겠네!”
“나도 보러 갈래! 엄마 공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민이가 나중에 커서 너와 같은 상황이라면 넌 뭐라고 할래?
답은 명확했다.
할 수 있다고.
처음엔 누구나 두렵다고.
너무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게 당연한 거라고.
하지만 이 시간을 잘 견디고, 큰 파도를 넘고 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거라고.
걱정 말라고.
진짜 할 수 있다고.
나를 지켜보는 아이의 까맣고 투명한 눈동자가 내 안의 쭈그리를 꿰뚫어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반드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엄마로서, 나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었다. 훗날 아이의 삶에서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래서 자꾸만 주저앉고 싶어 할 때, 엄마도 했으니 너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힘을 북돋워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8년 만에 시작하는 건데 겁나고 무서울 수도 있지! 내가 애도 낳고, 죽을 고비도 넘겼는데 뭔들 못해!
공연장에 들락거리길 10개월 정도 했을 때, 다음 스테이지로 건너갈 수 있는 답을 찾았다.
이 말인즉슨, 내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연극을 하겠다고 몇 안 되는 연극계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솔직히 아주 조금은, 아니, 그것보다는 좀 더 많이 기대했었다.
’공연을 보러 다니며 업계 지인들을 만나고 얼굴을 비추면 누군가 나를 데려다 쓰겠다고 하지 않을까?‘
주제넘은 상상을 했던 것이다.
연극계에서 이루어지는 공연 대부분은 연출자의 직접 캐스팅이나 관계자의 소개, 혹은 오디션으로 이루어진다. 연출자는 평소 공연 관람을 하면서 배우들을 눈여겨보고, 후에 자신이 연출할 공연의 배역에 적합한 배우를 직접 캐스팅한다. 배우를 찾지 못했을 경우 업계 관계자에게 도움을 요청한 후 소개를 받기도 하고, 공개 오디션, 혹은 비공개 오디션으로 배우를 캐스팅한다.
오디션을 제외한 나머지 방법은 입장을 바꾸어 조금만 생각하면 바로 단념할 수 있는 것이었다. 8년 간 경력이 중단 돼 있던 사람을 갑자기 무대에 올리는 건 너무 리스크가 크지 않은가. 나로서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연습에 뛰어드는 건 생각만으로도 살 떨리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인간관계가 지극히 좁은 타입이라 현장에서 활동 중인,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업계 지인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대부분 배우이고, 연출들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면 오디션은? 오디션이야말로 준비된 자의 전유물 같은 것이다. 일단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프로필 사진이 준비돼야 하며(이거 비싸다) 오디션 현장에서 심사위원들에게 보여줄 만한 레퍼토리가 다양할수록 유리하다. 8년 간 집 안에서 앓고, 살림하고, 육아만 하던 나로선 오디션장에서 보여줄 만한 것은 쥐뿔도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한다?
불가능하거나 적절치 못한 대안들을 지워나가자 내가 원하는 것, 가능성 있는 대안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나는 극단에 들어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