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종섶 Jul 20. 2021

슈퍼밴드2 박다울의 샴페인 터트리기

박다울은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을까, 아니면 터트릴 샴페인이 남아 있을까


슈퍼밴드2 박다울의 샴페인 터트리기

-박다울은 샴페인을 일찍 터트렸을까아니면 터트릴 샴페인이 남아 있을까          



슈퍼밴드2에 거문고를 들고 참가한 박다울은 창의적인 퍼포먼스형 연주자에 가깝다. 박다울을 거문고에 한정하거나 가둬놓기에는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깝다. 아니, 그의 재능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에는 ‘주머니 속의 송곳은 주머니를 뚫고 나온다’라는 뜻의 ‘낭중지추’처럼 박다울의 재능이 거문고를 뚫고 나올 것이다. 이미 뚫고 나왔다고 하는 말이 맞겠다.     


박다울의 거문고를 몇 가지로 정의한다면 현을 베이스로 사용하는 것과, 거문고를 타악기로 사용하는 것과, 현대음악적인 기법을 응용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거문고 현을 베이스처럼 사용하면서 리듬에 초점을 두는 연주는 현을 달고 있는 악기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다. 거문고가 선율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 노래의 색채가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점은 자연스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거문고를 타악기로 사용하는 것도 거문고나 국악 입장에서는 새롭게 보일 수 있으나, 이미 기타 같은 악기에서 통을 두드리면서 타악을 선보이고 있는 것처럼 거문고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때문에 이 역시 자연스러운 선택이며, 타악의 가미로 인한 곡의 편곡과 확장에 나름대로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하겠다.  

   

문제는 박다울의 퍼포먼스적인 기질과 표현인데, 과연 이것이 언제까지 갈 것이며 그 범위 또한 어디까지 그리고 어떻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한 관건이라고 하겠다. 퍼포먼스라고 할 때 조건에 제한이 없으면 아무 관계가 없으나, 슈퍼밴드2에 참가한 박다울에게는 슈퍼밴드라는 배경에 따른 두 가지 제한이 있다. 하나는 그가 사용하는 거문고라는 악기이고, 다른 하나는 슈퍼밴드2에서 함께 어우러져 연주해야 할 다른 참가자들의 악기 내지는 음악 스타일이다.     


박다울의 퍼포먼스가 거문고를 벗어나는 순간 박다울은 슈퍼밴드에서 설자리를 잃게 된다. 악기라는 자체가 없으면 밴드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다울의 퍼포먼스는 철저하게 거문고와 관계될 수밖에 없으며 거문고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 입장에서 보면 박다울은 거문고를 적절하게 이용하고 최대한 이용하는 연주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과정에서 박다울이 보여주었고 또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박다울이 솔로 연주로 보여준 무대는 거문고 연주라기보다는 거문고를 기본 틀로 활용해서 작업한 현대적인 퍼포먼스 행위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다. 거문고를 정상적으로 연주하기보다는 거문고 기본 연주 스타일에서 벗어난 연주였고, 거기에 자신만의 몸동작이 아우라처럼 가미된 시각적 연주였다.     


그런데 그런 박다울이 두 번째 보여준 무대는 일렉 기타 정나영과 일반 기타 진산과 함께 지디 앤 태양의 ‘굿보이(GOOD BOY)’를 선보인 것이었다. 이 무대를 박다울의 입장에서만 말한다면, 박다울의 거문고는 리듬과 베이스를 혼합한 형태를 맡았으며, 타악을 주도적으로 담당하기 위해 또는 현악기에서 타악기로 변신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과감하게 줄을 끊어버리는 행위를 무대 현장에서, 그것도 공연 중에 청중 앞에서 충격적으로 시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별하게 확대해서 주목해봐야 할 것은 곡이 정점에 다다른 순간 칼로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거문고는 오로지 타악기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이것을 보는 순간 박다울의 재기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다울의 재능을 거문고에만 가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 작곡가로 출발해서 장르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비디오아트 영역을 개척하고 확립한 백남준 같은 기질과 재능이 박다울에게 보였다. 현대음악의 대가인 존 케이지와 같은 실험성이 충분한 면모가 그대로 드러났다.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현대 음악가 실제로 있었는데, 박다울이 연주 중에 칼로 거문고의 줄을 전부 끊어버린 것은 일종의 현대음악적인 퍼모먼스, 그 중에서도 실험과 해체를 통한 새로운 본질 탐구와 발견에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박다울은 국악을 통한 현대음악적인 또는 실험음악적인 확장을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과연’이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다음에는?’이라는 궁금증이나 의문을 동시에 유발시켰다. 나아가 박다울을 아끼며 응원하는 사람에게는 걱정을 끼칠만도 했다.     


이런 심리적인 반응을 박다울이 연주 중에 거문고 줄을 모조리 끊어버린 행위에만 국한시켜서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연주하는 도중에 줄을 끊는 퍼포먼스의 타이밍이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체 출연 흐름에서 정확했는가,아니면 빨랐는가의 문제로 말이다.     


그것은 이후에도 그 이상으로 퍼모먼스나 등장해서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후에 특별한 퍼포먼스가 없게 되면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행위가 되어서 기대가 점점 식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후에도 그 이상으로, 적어도 그와 맞먹는 정도의 퍼포먼스만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준다면 그야말로 박다울은 슈퍼밴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세계와 음악영역을 무한대로 펼쳐나가도 될 만큼 충분한 재능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박다울의 다음 행보가 더욱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거문고를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거문고라는 맥락과 컨텍스트 정도밖에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과연 박다울이 다음 연주에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면 지금 시점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피아니시모에서 포르테시모까지 진행한다고 할 때, 무엇이 가지고 있는 최소치와 최대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처음에 피아니시모를 보여준 후에 마직 엔딩 장면에서, 즉 결승전 즈음의 무대에서 포르테시모를 보여주는 것이 극강의 계획이자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박다울에게 접목해보면 그가 거문고 줄을 칼로 전부 끊어버린 행위는 일반인이 보는 상식 수준에서는 적어도 포르테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앞으로 더 많이 남아 있는 연주에서 과연 박다울은 그 이상의 포르테와 포르테시모를 보여줄 수 있는 뜻인가?     


박다울은 슈퍼밴드2를 통해서 이제 시작했으므로 박다울에 대한 이 글도 시작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이 글에 대한 결론의 내용이나 성격, 그리고 평가는 박다울이 앞으로 보여줄 연주와 무대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