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기 왜 이리 어렵죠,

내 발목은 아직 나을 생각이 없다.

by Sunyeon 선연

왼쪽 발목이 아파 한의원에 다니고 있다. 2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이야기. 첫 시작은 '분리수거'였다. 내 몸만 한 박스를 잔뜩 쌓아 가지고 내려가다가 눈앞에 있는 턱을 보지 못하고 꽈당, 하고 엎어져버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지. 세상에 나이 마흔 넘어 아이처럼 철퍼덕 엎어지다니.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지만 주변의 시선에 더 부끄러웠던 기억이 선연하다. 흩어진 박스를 주워 모으는데 왼쪽 발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쨌든 걸을 수는 있었기에 분리수거까지는 무사히 마쳤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다. 찰과상을 입은 발목이 점점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화끈화끈 열감과 함께 내가 보지 못한 붓기로 시뻘개지는 녀석을 보며 머쓱해져 근무 도중 쉬는 시간에 잠시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반깁스를 덧대 주었고 더 큰 병원으로 가 보시라며 소견서를 손에 쥐어주었다. '가벼운 염좌겠지' 생각하고 오픈조 출근까지 한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반깁스를 하고 다시 매장으로 내려가니 파트너들 눈이 둥그레졌다. 회사가 인력을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시간대 시프트 하나가 빠져야 하는 상황이라니. 누구라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시간은 피크타임을 향해 가고 있었고, 말짱하던 사람이 반깁스를 하고 내려왔으니. "이 정도는 괜찮아요" 하고 근무하던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면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결근도 조퇴도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해보는 첫 일탈이었다. 매장을 나오면서 조금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지금 꼭 가야 하느냐"라는 말도 안 되는 점장의 말에 "그럼 포스라도 좀 보다 갈까요?"하고 대답할 정도로 그때의 나는 스타벅스에 진심이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2차 병원을 찾았다. 1개월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안정가료서를 받았고 그 덕에 나는 숨이 턱 끝까지 찼을 때에 한 달 치의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그곳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목발을 짚고 다녔다. 쉽지는 않았지만 올록볼록한 삶의 바닥을, 나는 드득드득 긁으며 흘러가고 있었다. 1개월 쉰다고 내 발목이 다 나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봄이 지나 여름, 여름이 지나 가을. 나는 최저시급에서 조금 더 넘는 시급을 받으며 관리자직 업무를 해내고 있었다. 그 때 당시 바리스타 직급과 딱 500원 정도 차이나는 시급을 받으며 더 많은 책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을 해냈으니 어디에서건 크랙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 들이쳤고 휴일은 차라리 도피였으며 스트레스로 급작스런 소비병이 돌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사는 것에 몰두하곤 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집안일이었다. 설거지나 집안일을 돌볼 수가 없었다. 쌓여 있는 그릇들을 보며 한숨을 내쉴 때가 많았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또, 시월쯤. 부산으로 여행을 갔을 때. 다쳤던 곳을 한번 더 다치는 사고가 났다. 타지에서 병원을 찾아 발목 엑스레이를 한번 더 찍었다. 다행히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라 했다. 다친 곳을 또 다치다니. 그때엔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누가 민 것처럼 굴러서 기묘했다. 여행 내내 발목보호대를 한 채 절뚝거리며 다녔고, 여행 마지막 날엔 비가 왔다. 소염제를 적당히 먹었고 치료는, 바쁜 일 때문에 적당히 잊혔다. 덜 아팠기 때문에 괜찮겠지. 하고 잊고 살았다. 일의 강도는 더 거세졌고 마지막으로 약국에서 휴대용 네뷸라이저를 처방받았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올해 3월부터, 여름까지 내리 쉬었는데도 내 발목은 아직 나을 생각이 없다. 네 시간 이상 일하면 시큰거리고 쑤시며 만 보 이상 걸으면 비명을 지르며 악다구니를 써댄다. 일상적인 걸음에는 문제가 없지만 오래 걷는 일은 힘들기 때문에 해왔던 일과 비슷한 일로 풀잡을 구하기는 어려워 파트타임을 뛰고 있다. 발목이 슬그머니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에 병원에 다시 다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일용직 근무자다. 내가 내 통증을 과신한 결과다. 평범하게 적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살아나가는 것. 지금의 나로서는 그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라 하루에도 몇 번씩 조바심이 나지만 이 또한 필요한 시간이라 생각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섣부르게 서둘렀다가는 내 발목이 '내 발목'을 붙잡을 것이므로.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하기엔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당신의 평범함도, 내게는 꽤 근사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일이 많다. 부러울 것도 많고.

일 년의 끝을 앞두고 이런 작고도 위대한 평범함을 꾸준히 가꿔온 스스로를 기꺼이 칭찬해 줄 시간을 많이 가지시기를 바란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6화마흔둘, 바이올린을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