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둘, 바이올린을 시작했습니다.

첫 튜닝부터 D Major음계를 연주하기까지.

by Sunyeon 선연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건 사실 어떤 체험단 모집에 덜컥 당첨이 되어서였다. 온라인 강의를 함께 들을 수 있는 패키지였는데 강의가 업데이트되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에, '바이올린의 A TO Z'라는 꽤나 그럴싸한 제목의 1강이 열릴 때까지 현을 튜닝도 하지 않은 채 가방을 방구석에 그대로 두었던 게 기억난다. 그러다 드디어 현을 튜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나는 비장한 얼굴로 앉아 케나즈 튜너를 바이올린 헤드에 끼웠다. 자꾸만 설렁설렁 풀려버리는 펙을 돌리다가, 팅. 보기 좋게 E현을 끊어먹는 것으로 호기롭게 바이올린을 시작해 버리고 만 것이다.


꽤나 추웠던 날이었다. 나는 줄 하나가 끊어진 바이올린을 가지고 악기사에 들렀다. 악기사 사장님은 악기를 보더니 혀를 끌끌 차셨다. "에잉, 제대로 된 악기를 사야지 이게 뭐야!" 초면에 잔뜩 혼이 난 나는 보기 좋게 주눅 들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올린에 대한 기본 지식도, 상식도 전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새 활을 샀고 테일피스를 교체했으며, 현을 전부 좋은 것으로 바꾸었고 펙도 전부 풀리지 않는 것으로 갈았다. 심지어 현을 지탱하는 브릿지까지. 활에 송진을 잔뜩 바른 뒤 악기사 사장님은 "한번 켜 봐요 자." 하고 바이올린을 내게 내미셨다. 나는 아기를 받아 들듯 악기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12만원을 계산했다. 딱 ‘12만원’만큼 머쓱한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바이올린에 대한 영상 몇 가지와, 정보 몇 가지. 또 책을 검색해 읽어보았다. 각 부위의 명칭들과 특징들이 단정하게 적혀 있었다. 부러 이것저것 읽은 건 현을 바꾸고 악기를 제대로 정비한 만큼 소리를 '잘' 내보고 싶은 욕심이 들어서였다. 처음은 활을 잡는 연습을 했다. 다행히도 어렵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은 없었기 때문에 내 자세가 제대로 되었다고는 단언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매일매일 조금씩, 10분,15분. 활을 잡는 법을 연습하고 악기를 어깨에 끼우는 연습을 하면 할수록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힘을 주면 안 되더라. 악기도, 삶처럼.


끼우기와 잡기가 익숙해진 다음에는 A Major를 연습했다. 활의 가장 아랫부분부터 사용해서 가장 윗부분까지, 1/4 정도로 나누어 고르게 활을 쓰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활의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고 또 신묘했다. 처음엔 그저 소리가 나는 것만으로도 놀라웠다. 지금도 제대로 튜닝된 악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 얼마나 완벽한 균형인가!' 하고 감탄하곤 한다. 조율이 잘 된 업라이트 피아노 앞에 앉아도 비슷한 느낌이다. 기어이 악기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다.


중간엔 갑자기 바이올린을 떨어뜨려서 넥을 부러뜨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길이 더 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새 친구를 들였다. 내게는 꼭 필요한 지출이었다. 없어도 될 일이 일어난 것 같아 마음이 아픈 건 다른 얘기지만.


어제는 손가락의 자리를 표시해 주는 지판 스티커를 떼었다. 손의 감각이 음계를 기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익숙해지는 건 손이 익었다는 것이고, 체화했다는 건 또 익숙해졌다는 '언어'일 것이다. 어제오늘은 튜닝한 적 없던 나머지 왼쪽 두 줄도 전부 튜닝하고 소리를 내 보았다. D Major를 16비트로, 조금 어설프게 연주하면서 매일의 꾸준함은 작아도 힘이 셀 것이라는 생각을 무심히 했다. 앞으로 오랜 시간 동안 아마 계속 서투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매일 조금씩 소리를 ‘내고’ 있겠지.


어제는 출판사 지면 인터뷰를 했다. 마지막 질문에 '꾸준히 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시작은 어렵다. 그렇지만 꾸준히 하기는 조금 더 어렵다. 이렇게 꾸준히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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