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다.

보리차를 몇 번이나 우려 다시 마시는 사람처럼.

by Sunyeon 선연

'작가님'


왜일까, 여전히 나는 이 호칭이 간지럽고 낯설다. 출판사에서 전화를 받거나 컨택을 할 때마다 스스로 흠칫 놀란다. 마치 신생아들이 제 몸짓에 놀라 소스라치게 울음이 터질 때가 있다는데 내가 딱 그 꼴 같다. 가끔은 우스워서 피식 웃을 때도 많다. 요즘같이 읽을 사람보다 '낼 사람'이 많은 시대가 또 있을까.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 분야들이 전부 취향의 분야들로 결을 옮겨가고 있다고 나는 조금씩 느낀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자책이 아무리 범람해도 종이책의 본질을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나 또한 그저, 글을 쓰는 것이 좋은 사람이었다. 스스로의 아픔을 토해내기 위해 글을 선택했고 그때그때 맞는 언어를 골라 늘어놓거나 내어놓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글들을 묶고 다듬고 모아서 낸 것이 에세이 '어떤 오후' 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었지만, 1판 1쇄는 여름 끝 즈음에 세상에 나왔다. 일상 수집가가 낸 이야기에 적지 않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고 소량이지만 많은 분들의 손에 가 닿게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이른 가을, 2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가을 감기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감기는 정확히 2쇄가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됐는데 지독하게도 오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독감이 아니었나 싶다. 계절 하나를 꼬박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는 데에 보냈다. 물론 이전 봄 여름 사이에도 내가 쓴 글을 무척 많이 읽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더 많이 읽으며 계절을 났다. 어떤 날에는 그냥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리 읽기도 했다. 감기약을 옆에 두고 보리차를 끓여놓으면 그걸 몇 번 우려 마시는지 모를 정도로 병이 몇 번이나 새 물로 우려졌다 다시 채워지고, 시간이 그렇게 갔다. 거기 늘어선 내 언어들이 부끄럽고 또 몇 번을 읽어도 날 것의 그것 같아서 가끔은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런 언어들이 세상에 그대로 내보여졌다니.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민낯으로 자외선 가득한 햇살 한복판으로 나선 기분이 뒤늦게 들이쳤다. 고르고 고른 단어들은 무력했고 군데군데 이어지지 않은 틈새들이 보였으며 이어지다 만 공백들이, 덜 넘어간 알약처럼 내 속을 쓰리게 했다. 작가로서 스스로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들을 전부 짊어져야 하는 일이었구나. 이전엔 왜 미처 몰랐을까.


문장부호 하나, 사진의 방향. 크기. 쉼표와 따옴표. 그런 온도들을 고쳐 가며 계절을 맞았다. 2쇄는 개정판으로 내기로 이야기가 되었고, 그렇게 검수된 책이 며칠 전 다시 빛을 보았다. 나는 어제 오후에 완성된 책을 받았다. 책을 스르르 훑어보면서 보리차를 몇 번이나 다시 우려 마시는 사람처럼 경건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것은 내 글이지만, 내 글이 아니다. 내 글이 아니면서도 내 글일 것이다. 2쇄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문장을 이렇게 세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까, 질리도록 읽어볼 수 있었을까. 쉼표 하나를 떼거나 따옴표 하나를 더 얹거나 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개정판에는 아끼는 사진 몇 장을 더 골라 넣었다. 아직 내 책을 읽어보지 못한 누군가에게 가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가 가기 전에 개정판을 낼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 개정판을 내면서도 공부한 게 있다. 쓰는 사람은 쓰기 전에 우선 '읽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기력해서 하지 못했던 독서를 슬슬 다시 시작해야겠다. 12월 말에는 이름 모를 작가분들을 만나러 작은북토크에 참여할 예정이다. 내 책을 모티프로 만든 작은 굿즈들을 챙겨 간다. 조금 부끄럽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할 수 있도록 미리 연습을 해볼까 싶다.


"안녕하세요. 에세이 어떤 오후를 쓴 작가, 선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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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