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이천 원의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선택지 없는 소비, 그 씁쓸한 뒷맛.

by Sunyeon 선연

소득이 터무니없이 줄어든 지도 꽤 되었다. 소득과 소비는 비례하므로, 소비가 줄어든 지도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쓰지 않는 것들을 정리하거나 처분했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버렸으며 필요 없는 것들은 가차 없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작고 자잘한 것들에게서 위로를 얻는 내게 늘리는 것 이외에 줄이는 삶은 선택지에서 없었던 것이어서 꽤나 센세이션 한 변화였다. 어떤 캐릭터 하나에 꽂혀서 그 캐릭터 인형만 주야장천 모았던 적도 있었고, 미니어처에 빠져 미니어처만 잔뜩 수집했던 적도 있으며 한땐 1/6 사이즈 구체관절 인형에 빠져 수입만 나면 그걸 사다 모았다. 그것들마저도 이제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남아 있다.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고정지출비용. 그 비용이 빠져나가고 나면 내게 남는 비용은 고작 딱 2-3주를 아슬아슬하게 버틸 수 있을 정도의 그것. 사실 그것마저도 조금 위태위태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에게 받는 이 도움조차도 스스로를 옥죄는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스스로를 완벽하게 벌어 먹여 살릴 수 없는 삶이라니. 발목에 보호대를 동동 동여매고 짧은 시간의 파트타임을 뛰러 나가면서도 삑, 카드태그를 하는 순간에도 교통비를 걱정해야 하는 계절들을 살아내게 되었다. 그렇게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겠지.


스타벅스의 5년 10개월 여정을 마치고 난 뒤, 내게 주어진 퇴직금은 그리 적은 돈이 아니었다. 마침 여분의 몫도 있었고, 어느 정도 금전적으로는 독립한 상태로 작년 이맘때의 나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합의이혼 이후에 자가로 작은 오피스텔을 장만하고도 돈이 남을 정도였으니 앞으로에 대한 걱정은 사실 무의미했다. 나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다짐만 하면 되었고, 그걸 실천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손에 쥔 돈을 허무하게 다 날려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모종의 이유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모아뒀던 돈을 전부 사기당하고 난 다음에는, 발목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다쳤던 인대 문제가 재발했고, 짧은 시간 근무해도 발목이 버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짧은 시간 일하는 '일용직 근무'를 선택해야 했고 시급을 받으며 근무를 하는 파트타이머가 되었다.


하루에 내 발목이 근무를 버틸 수 있는 것은 고작 네 시간. 네 시간 이상 일하면 어김없이 발목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그런 상황 때문에 오래 근무를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소득이 줄어들었고 소비가 차례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연스레 선택지가 사라졌다.


소득이 는다는 것은 '선택지'와 연관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삶. 내 소득이 넉넉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소득이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나는 가장 저렴한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플랜 에이도 비도 없다. 그저 가장 저렴한 것을 담아도 그런대로 만족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을 계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론 알았어도 이전엔 절절히 못 느꼈던 것들이다.


소비의 선택지가 충만했던 시절, 장바구니에 아무렇지 않게 담았던 20만 원짜리 가죽 가방, 지금이라면 구매하지 않을 형형색색의 텀블러. 사놓고 아직 신어보지도 못한 신발들, 이런 것들을 보면 '그때의 내가 샀겠지' 싶다가도 어딘가 비현실적으로 아득해진다. 나는 제법 우아하게 스트레스를 풀면서 살고 있었구나. 소비를 선택하는 삶을 택하면서, 나 좋은 대로. 아주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먹고 싶은 것을 장바구니에 담으며, 즉시 결제하지 못하고 며칠만 더 기다리자고 스스로의 욕구를 억누르는 나. 너무 추운 날, 열이 펄펄 나면서도 돌아가는 길에 '내 시급은 만 이천 원이지 참' 생각하며 택시를 부르지 못하는 나.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여러 번 고르고 또 고르고, 생각하는 나. 이렇게 진득하게 소비에 대해 고민하고 고려했던 적이 있었나 떠올려 보면 '아 이제야' 싶어서 그냥 웃고 마는 거다. 내 소비 습관을 고치라고 신이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구나. 싶다가도 시급 만 이천 원, 만 생각하면 조금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얼른 낫지 않는 발목을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늘도 나는 만 이천 원의 시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래봤자 한 달 내 모이는 돈이 내 소비를 다 커버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래도 지금의 내 고민이, 조금은 지질한 이 씁쓸함이 언젠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경험으로 매듭지어지기를. 결국은 이 과정들이 나 스스로에게 필요한 시간들이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오늘도 '소비의 선택지'를 위해, 각자의 전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두의 '일하는 마음'에 작은 경외심을 보낸다. 물론,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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