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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지친 지 오래되었다. 모든 모임에서는 제약이 생기고, 연락에서는 기약 없는 말들이 오간지도 꽤나 긴 시간이 흐른 것 같다. 나 역시 마스크를 쓰고 길게 일하다 마스크를 얼른 벗고 싶어서 빠르게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들이 늘었다. 원치 않아도 집에 머물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읽어야 할 책, 해야 할 취미생활 들이 지천에 놓여있어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자주 쓰던 카메라엔 먼지가 앉기 시작했고, 집에서조차 셔터를 누르지 않는 나날들이 늘어가니 자주 우울하고, 자주 가라앉곤 했다. 부러 쉬는 날을 내어보아도 빨래를 널거나 주방을 정리하는 일 이외에 어느 것에서도 생기를 찾지 못하는 나날들을 지내다 보니 ' 나 이렇게 지내고 있어. ' 하는 안부인사도 예전만큼 하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이 어떤 모양으로 사는지, 가까이 계시는 엄마가 어떤 오후를 보내는지. 이전보다 덜 묻게 된 것도 먹고사니즘이 일상의 쳇바퀴의 정중앙에 있다는 걸 알아챈 이후부터인 듯싶다. 궁금한 마음들이 작아지고, 매일의 날씨에서도 별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렇지 않은 매일을 보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버석한 매일이 있었을까 새로이 생각해보게 되는 최근이었다. 새로울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매력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지, 체념하듯 입술도 떼지 않고 웅얼거리는 사람처럼 지냈다. 좋아하는 글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후, 퇴근길에 우연히 적당히 파아란 하늘 위에서 모습을 다 감추지 못한 낮달을 만났다. 꽤나 그럴싸한 우연이었다. 몸이 눅진눅진 지쳐 있었고, 평소보다 과한 업무 때문에 정신까지 묵직한 날이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위를 올려다보다 낮에 뜬 달을 발견한 거다. 그래, 그건 발견, 이라고 이야기해야 어울릴 만한 것이었다. 최근에 하늘 볼 일이 잘 없었나? 싶었다. 비가 오는구나, 날이 좋구나. 하고 지나쳤거나 하얀 하늘을 보며 또 예고도 없이 비가 오려나, 하고 예상하는 게 다였던 것 같다. 아 예쁘다, 하고 잠시 멈춰 하늘을 오래 봤다. 너는 원래 거기에 있었던 거니, 아니면 없다가 고개를 내민 거니. 사라지려다 아직 그 자린 거니. 그것도 아니면 그냥 갑자기 나타난 기적 같은 우연이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카메라부터 찾았다. 단렌즈를 망원렌즈로 바꾸어 달고,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베란다의 방충망을 열었다. 베란다에 매달려 신나게 낮달을 찍었다. 머얼리 아직 하늘 중간 즈음 걸려있는 장면들을 담은 후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포토샵을 켰다. 누군가와 이 장면을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엄마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잊고 있던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하늘 한 번 봐봐.' 하고 메시지를 적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을 받은 누군가는, 자신이 있는 곳의 하늘을 한 번쯤은 쳐다보게 되겠지. 이런 낮달 같은 우연들이 별 것 아닌 매일을 지낼 용기가 되기도 할 테지. 며칠 전엔 소나기가 왔다간 후 예쁜 쌍무지개가 떴다는 연락을 누군가에게서 받았다. 이런 마음들은 이렇게 전해지고, 또 전달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