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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한 다짐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다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다짐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계획적으로 지내는 것에 익숙했던 나는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을 맞닥뜨리는 데에 별로 면역이 없었다.
주중을 학교 집 학원을 왔다 갔다 하며 보내고 일요일에 다른 일상을 보내보려 야심 차게 계획을 잡았는데 만약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치면 그날 하루는 완벽하게 망한 하루였다. 나에게는 생각하던 계획이 있었는데 하나가 어긋난 것 만으로 전체가 어그러진 것만 같았다. 마치 손가락으로 톡 친 도미노처럼 모든 게 와르르 넘어져버린 느낌. 늦잠을 잔 나를 후회하며 다음번엔 계획대로 해내야 한다는 강박으로 마무리되는, 이를테면 어리고 고집 센 나에게 다짐이란 강박과 맞닿은 어떤 것이었다.
한 해를 시작할 때, 그것도 아니면 한 해를 마무리할 때, 스스로가 너무 느슨해졌다 느낄 때. 아니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여길 때, 다짐은 강박처럼 찾아오곤 했다. 책을 몇 권은 읽어야지, 일주일에 몇 번은 일기를 써야지. 남는 시간엔 이런 취미활동을 해야지.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것들을 해내야지, 모든 것에 진지한 나는 어떤 것을 해볼까? 하는 호기심보다 이걸 해내야 한다는 무게감에 늘 버거웠던 것도 같다. 다짐이란 말은 확실히 '그 정도 무게는 있어야 하는 말'에 가까웠다.
그러던 어느 해 12월. 스스로 올해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다가 크게 상심에 빠졌던 적이 있다. 스스로와 한 약속은 끊어진 철길처럼 볼품없었고 하릴 없이 흐른 순간들 속에서 특별히 잡아챌 성과가 없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조금 우울해졌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떠올려보니 이루지 못한 다짐들이 둥둥 일상의 어느 쯤을 부유하고 있었다.
나는 끈기가 없어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어. 하는 마음에서 조금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애써 다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다짐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나를 일으켜 세워야만 하는 다짐이 나를 할퀴는 순간, 그 순간이 내게 체념만 가져다준다는 걸 꽤나 늦게 깨닫지 않았나 싶다. 어깨의 힘을 풀고 조금 가볍게, 좀 해볼까? 하고 어떤 문을 살짝 열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마음일 텐데.
여전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에서 다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지만 (확실히 다짐이 필요한 순간들도 있으므로) 이제 나는 나를 할퀴기 위해 다짐하지는 않는다. 굳이 손에 힘을 주지 않더라도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은 지천에 있으므로.
어떤 다짐이 나를 가볍게 밀어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이제는 안다. 어떤 것을 해내야만 하는지, 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다 가만히 손의 힘을 푼다.
사실 이제, 아무래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