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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지' 하고 말을 걸면 '춥네' 하고 대답해 줄 사람이 있는 따뜻함.
_타와라 마치, 샐러드 기념일 중
한 때 타와라 마치의 '샐러드 기념일' 이란 책에 푹 빠져 지냈다. 마음을 움직였던 여러 문장 중 하나를 건져 스크린에 띄워 보면 위와 같은 모양이다. 타이핑을 하면서도 마음이 제법 따뜻해진다. 오늘은 응답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해 볼 요량이다. '대화'에 대해 참 오래 고민하며 살아왔는데 핑이 가면 퐁이 오는 대화가 가장 맛있는 게 아닐까 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냈다. 어떤 주제가 어떤 공간에서 끝내주는 밸런스로 휙 휙 오가는 자리에서는 나도 모르게 말을 많이 꺼내게 된다. 그렇죠, 하는 공감이 꼬리에 붙으면 이야기의 주제는 살이 붙어 눈을 뭉쳤을 때 커지는 눈덩이처럼 슬며시 불어난다. 핑과 퐁을 전부 담당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응답이다. 응답 중에서도 '공감' 이 담긴 것이 가장 힘이 센 것 같다.
한 때는 무응답에 상처 받는 사람이기도 했었다. 대화를 열어 놓고, 무언가를 대답할지 몰라 말을 오래 고르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거나, 답을 하지 않는 사람을 미워해 본 경험도 있다. 용기 내어 무언가를 꺼냈을 때는 조금 더 서운해지곤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무응답도 응답에 속하는 어떤 마음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누군가는 핑을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몰라 퐁으로 침묵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응답을 듣지 않아도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때가, 요즈음은 왕왕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거나 응답을 기다리는 일은 꽤나 설레는 일이다. 누군가의 부름에 내가 대답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사인이기도 하고. 누군가가 응답하면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게 되겠구나, 하는 마음에 두근두근해서일까. 최근에 들은 응답 중 가장 근사한 것은 '응 그럴 수 있지, 이해해.' 하는 응답이었다. 나 스스로의 감정에 갇혀 미로를 헤매고 있었는데, 그래도 괜찮다는 답을 들은 것만 같았다. 마음을 두드리는 답을 들으면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응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하는 다짐을 한 번 더 하게 된다.
누군가를 쉬이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깊이 생각했던 적이 있다. 누구도 누군가의 어떤 삶을 쉬이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관계는 세상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존재할 것이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공감하면서 응답할 수 있다면 어떨까. 적어도 나는 너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진심만큼은 전달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그녀의 부름에, 그/그녀의 이야기에 조금 더 상냥하게 응답하고 싶다. '아. 그랬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