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 Sep 07. 2021

엄마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기를 원했을까? 가끔 묻고 싶었던 적이 있다.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엄마는 나를 만날 때까지 6년이란 시간을 고생했다고 한다,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부터 견디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는 결혼을 하면 무조건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을 테니까. 나를 만나기 전 엄마는 많은 고비들을 넘었다. 상상임신을 하는가 하면, 이름이 문제라는 점쟁이 말에 이름을 개명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엄마는 내가 들어서기 직전에 만들어진 이름으로 삶을 살고 있다. 


13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여름에 나는 엄마가 얼마나 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아버렸고, 그래서 그때부터 엄마는 내게 애틋하면서도 씩씩하고, 강하면서도 여린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엔 나를 모질게 혼내던 억센 사람이기도 했고, 꽤나 고집이 센 분이라 나에게는 그저 큰 사람이었다. 가끔 엄마도 표정이 어둡거나, 화가 나 있을 때가 있었지만 내가 이해하기엔 어렸으니까. 집안의 사정이나, 엄마의 기분을 헤아릴 정도로 성숙하지 못한 나는 발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덤벙거리는 여자애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내게 역할에 대해 많이 강조했다. 손 아랫동생을 잘 챙겨라, 여자아이라면 단정해야지, 남의 눈에 밉보이면 안 된다. 하는,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엄마는 훈육도 그 부분을 강조해서 하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남에게 보이기 좋은 사람이면 되는 줄만 알았지.


사춘기가 되었을 무렵, 아. 열병 같은 사춘기가 있긴 했었나? 부모님에게 대들었던 기억이 크게 없는 걸 보면 특별한 게 없었는지도 모른다. 이래야 한다, 는 말이 강박처럼 옮아 붙어서 거머리 같은 강박을 떼느라고 부모님이 싫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겠니, 하고 이야기하는. 그것만 생각하는 것 같은 부모님에게 많이 서운했던 기억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에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본인의 힘듬을 숨기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가족이어도 서로의 선과 사생활이 있었고, 엄마의 그늘을 알아챌 즈음에도 엄마는 힘든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는, 그땐 이랬단다. 이땐 이랬지,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내어놓으시기 시작했다. 퍼즐처럼 맞춰지는 이야기를 들으며 참 많이 힘들었겠다며 엄마를 위로했다. 눈가에 주름을 만들며 엄마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때의 내가 다 이해하지는 못했겠지만, 엄마가 '엄마'라는 이름에 갇혀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런 이야기들을 누군가에게 조금 더 편안하게 할 수는. 내려놓을 수는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다. 이제 조금은 평행선에서 건너편에 선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것 같지만 여전히, 엄마는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 쓸쓸한 기분이 된다.


며칠 전,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며칠 전 엄마가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내 손으로 내 발로 걸어서 갈 수 있는데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는 그 말이 무엇보다도 아프게 들려 이른 저녁 돌아와서는 조금 울었다. 그 와중에 반찬을 가득 싸 내 손에 쥐어주시는 엄마의 마음 위에는 아직도 어떤 무게들이 있을 거다. 다 내려놓지는 못해도 이제는 조금 내비쳐도 괜찮을 텐데. 엄마 덕에 나도 나를 제대로 내려놓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기대지를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우는 소리를 하고 싶어지기도 하다가, 몸의 어딘가가 자꾸 약해지고 작아지는 엄마와의 시간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은 나 자신이 죄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토록 엄마는 여전히 내게 애틋한 존재다.


이제는 그때의 엄마가, 어린 나에게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도 엄마가, 나도 딸이 처음이었다. 지금도 어떤 처음을 함께 겪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번 생에 엄마가 될 마음을 접었지만 남은 시간들, 엄마와 함께 보내는 것을 기꺼이 행복해하면서 괜찮다면 엄마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든 폭풍우가 다 몰아치고 난 뒤, 사실 이때 이랬어.라고 힘겹게 말을 하는. 내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내 모습을 잠시 떠올려 본다. 영락없이 엄마 딸이다.  

이전 18화 여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