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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10. 2021

자연스럽게

상업 사진을 하던 시기, 겨울 초입은 늘 영어 유치원을 다니던 아이들의 졸업앨범 촬영으로 시작했다. 시즌 시작이 유치원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여섯 살 친구들이 사진을 찍으러 스튜디오로 방문할 때면 나는 아, 한해의 끝이 오는구나. 하고 알아채곤 했다. 의미 있는 연례행사이기도 했으니까. 아이들의 사진을 찍고, 작업을 하고, 수백 권의 앨범을 검수하고 패킹하면서 계절 하나가 오고 가는구나. 를 실감하는 순간들도 있었다. 촬영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은 '얘들아, 자연스럽게 웃는 거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섯 살 친구들이 '자연스럽다'는 형용사를 이해는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그런 종류의 단정한 사진을 찍어본 여력이 없을 친구들은 자꾸 움직이려고 하거나, 필사적으로 브이를 하려고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완전히 단단하게 굳어서 고개를 자꾸 카메라 바깥쪽으로 돌리기 바빴다. 움직이지 말아야 사진을 찍을 수 있으니 움직이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웃으라고 이야기를 하다니. 옳은 말을 했지만 그때의 나는 얼마나 어려운 주문을 여섯 살 어린이들에게 해 왔던 걸까. 이제야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연히 신고 간 구멍 난 양말을 보여주면 웃거나 내가 '화났어? 화내지 마.' 하고 웃으면 나를 보고 외려 환하게 웃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의 사진을 담고 고르며 나는 단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사진을 고르며 피식, 웃곤 했다.


자연스럽다. 는 말을 좋아한다. 사전에서 '억지로 꾸미지 않고 이상함이 없다'라는 뜻을 확인한 이후부터 그랬다. 그 말을 좋아하기도 하고, 그렇게 정해진 것처럼 이루어지는 것들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러움에 나를 맡기는 일도 늘었다. 맨 얼굴로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워 아이라인을 그리는 법을 슬쩍 잊는다던가, 적당히 애매한 거리를 이동하려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가 배차간격을 보고 자연스레 근처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목적지로 내달려 본다던가, 어떤 일을 '순리대로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그냥 상황이나 운명에 내맡겨 본다던가. 생각해보면 흐르는 것을 구태여 막으려 하지 않고, 오늘의 날씨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려 하지 않고, 어떤 해에는 피고 어떤 해에는 피지 않는 꽃나무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지 않는 마음과도 '자연스러움'은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대로, 어떤 일이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바람과는 관계없이 그리 되도록 내버려 둘 때 어떤 문제가 '문제'가 아니게 되기도 하는 경험을 많이 맞닥뜨리게 되더라. 모든 것은 순리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니까.


가장 최근의 자연스러움은,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받은 생일 축하 메시지들이었다. 평소에는 긴 연락이나 안부 인사를 구태여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내 생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축하한다는 마음을 전달받았다. 오랜만에 인사를 하고, 간단한 안부를 묻는데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워 내심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생일을 핑계로 연락한다는 누군가의 말엔 더 자연스러울 수 없는 반가운 마음이 묻어 있어서 어떤 자연스러움은 반가움이구나, 하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흐르다가 나도 어느 지점에서 누군가에게 당신을 기억하고 있어요, 하고 인사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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