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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Sep 06. 2021

여운

여운이 남는 것들에 대해 늘 마음이 쓰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구태여 얹을 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들에 대해 품는 마음. 열린 결말로 마무리되는 영화나 이야기의 엔딩. 읽다 만 책의 다음 페이지. 슬슬 긴소매를 찾게 되는 어떤 계절 끝에 부는 바람. 마침표가 아직 찍히지 않은 서사 안에서 여운은 의미를 갖는다. 


최근엔 계절적으로는, 여름의 마지막 여운을 즐기는 중이다. 슬렁슬렁 접어두었던 긴소매 옷을 꺼내 두는 준비.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서늘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건네는 안부 인사도 조금 달라졌다. 지금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또 금세 춥다고 호들갑을 떨 계절이 오겠지. 모호해서 옷차림을 고민하게 되는 그 어떤 때야말로 계절의 여운을 즐기기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오늘은 소매를 걷지 않을 요량으로 긴소매 티셔츠를 골라 입었다. 예상대로 하루 종일 소매를 걷지 않았다. 이마 즈음에 닿는 바람이 이제 곧 가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적으로는, 곧 진급 발령을 앞두고 있어 현재 직급의 여운을 맛보고 있다. 새로이 전배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아져 지금 몸담은 매장과 안녕을 고하는 나날들을 보내는 중이다. 새로운 환경, 새로 만나게 될 사람들, 새로운 직급을 달면서 새로이 익숙해져야 하는 업무들, 늘어나는 근무시간. 지금과 달라지게 될 것들이 너무나 많아 덜컥, 겁이 난다. 떨리고 기대되는 마음보다 무서운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이 내심 아쉽기는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아마, 지금이 아니면 경험하지 못하는 것들 일지 모른다. 업무의 양이 느는 것뿐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직급이 달라진다는 건, 보아야 하는 영역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이므로 세계의 시야각을 조금 넓히기 전, 마지막으로 내가 볼 수 있는 시야각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아마 조금 다른 종류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잃고, 또 무엇을 얻었을까.


다른 이야기지만, 마음에 들어 샀던 책을 몇 개월째 완독 하지 못하고 있다. 문장이 딱딱해서도 아니고, 책이 재미없어서도 아니다. 문장의 행간에서 여운을 느끼기에는 내가 너무 여유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대 본다. 사실 그렇게 미뤄놓고 있는 것이 조금 있다. 읽다 만 책, 갤 때가 된 빨랫감, 침구 정리. 어떤 것에서 여운을 느끼려면, 적어도 여유 정도는 있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시간에 쫓기지 않는 날 평소엔 다니지 않는 길로, 꽤나 익숙하지 않은 어떤 곳에서 완독 하지 못한 책을 다 읽어버리는 상상을 해 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좋은 여운이다, 하고 중얼거려보는 마무리까지. 식은 커피가 잔에 조금쯤은 고여 있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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