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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키우는 데에 별 재능이 없었다 사실. 물을 너무 주어 죽인 화분만 여럿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화분은 어떤 기대감을 갖게 했다. 어떤 해엔 꽃을 피우고 어떤 해엔 조용한 깅기아남 화분에 대해 생각한다. 어머니가 새 집에 이사한 기념으로 선물해주신 것인데 키우는 법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하셨던. 물은 어떻게 주면 돼? 하고 여쭈었더니 엄마는 그냥 완전 바싹 말랐을 때만 촉촉하게 주면 된다고 하셨다. 정말 딱 그 정보 하나가 다였다.
집에서 가장 큰 꽃화분이었던 깅기아남은 꽃이 만개한 채로 새 집에 와서, 나와 이 집에서 4년의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조금 독특한 향기가 나는 흰 꽃을 피우는 화분이었다. 가지치기도 겨우 두어 번 해 준 것이 다로, 다른 화분들에 비해 따로 정성을 쏟을 일도 없었다. 내가 아는 양육방식이 딱 하나뿐이었으므로. 엄마의 말대로 겉 흙이 바싹 마르면 충분히 물을 주는 것. 볕이 좋은 베란다에 내어 두는 것. 그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생을 다한 화분들을 많이 마주했다. 마트의 상한 레몬 씨앗을 발아시켜 기르기 시작했던 잎이 싱싱했던 레몬 화분, 겨울에 들여온 동백 화분, 3년은 지나야 열매를 볼 수 있다는 커피 화분, 어쩌다 너무 많이 커져버린 방울토마토 화분은 열매를 맺고도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각자의 대하는 법이 조금은 달랐는지도 모르겠다. 식물의 언어를 알 수 없으니 어느 정도를 공들여야 하는지, 어떤 타이밍에 어느 정도의 물이 필요한지. 어떤 온도와 습도여야 하는지. 그 부분에서 세심한 케어가 어려웠다. 물어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불편하지 않니? 너는 어떤 게 편하니. 하고. 늘어선 화분들 앞에서 물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테지만.
아무튼, 깅기아남의 잎은 가끔 먼지가 앉아 시간을 흐르고 있구나, 정도만 느껴질 뿐 늘 그럴싸하게 건강한 잎들이 달려 있어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특별히 할 수 있는 것들이 없기도 했다. 흙이 마르면 물을 줄 것. 가끔 억센 잎이 있으면 가지치기를 할 것 가지의 색이 변하거나 잎이 마르거나 하지 않았으므로 크게 위기를 느낄 일도 없었지 싶다. 그런데 첫 해 보았던 꽃을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보지 못했다. 잎만 무성한 그 녀석이 살아있긴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무심히 들었다. 늘 같은 모양의 꽃화분이라니. 그런데도 흙이 마르면 가끔 물을 주는 일은 놓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유지하는 느낌으로.
올해 3월이었나, 무심하게 물을 주려 베란다에 나갔더니 꽃화분에 꽃이 피어 있었다. 하얗고, 향기가 나는 작은 꽃망울들이 가득.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선물을 받은 기분이 되어 마음이 가득 찼다. 사실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첫 해 본 꽃을 여태 보지 못해 올해도 꽃을 안 피우려나 했는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는데도 꽃이 피었네. 하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고. 보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베란다 문을 열 때마다 꽃향기에 따뜻해지곤 했다. 어떤 계절을 견디고 피어났을 거였다. 그냥 무심한 꽃나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화분을 기른다는 것은 어떤 기대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무언가 피어나거나 열릴 것이라는 기대. 사실 익숙하게 실망하는 일들이 더 많지만 가끔 피어나는 의외들이 내일을 기다리게 한다. 내가 깅기아남에게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겼으나, 사실 흙이 마르면 물을 주는 것을 꾸준히 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마음도 조용하면서도 애틋해서 좋다. 쉽지 않지만 기대하는 마음을 놓지 않기로 한다. 좋아하는 기대하고 싶은 사람에게 결국은 기대하게 되는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