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마도 Sep 18. 2021

휴일

'휴일에 뭐 해?'


최근 들어 내가 할 때도, 들을 때도 가장 기분 좋은 질문이다. 쉬는 날의 가장 좋은 점이라면 우선 시간에서 쫓기는 감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게 첫 번째. 무언가를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는 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지는 기분을 느낄 때 최근엔 아 쉬는 날이구나. 한다. 출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어떤 주는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고 어떤 날은 실컷 늦잠을 자다가도 돌아가는 건조기가 멈추는 것을 보지 못하고 출근하는 일도 있다. 출근을 해야 하는 날에는 그 시간 전에 내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동선을 꼼꼼하게 생각해야 한다. 도시락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날에는 밀프렙 도시락에 미리 반찬을 챙겨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는다. 쉬는 날에는 조금 게을리,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들에서도 앞 뒤 시간을 생각하고 재야 한다. 자연스레 마음이 급해진다. 오늘은 근무 시간이 몇 시, 그럼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쫓기게 된다. 제법 숨 가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아 오늘도 이렇게 정신없게 가버렸구나, 하고 한숨을 폭 쉬게 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이 휴일이면 긴장이 스르륵 풀리니 휴일 전야엔 제법 또 느긋해진다. 당장 내일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미리 정해 놓은 시나리오도 있지 않냐고? 물론 약속을 정하거나, (최근엔 사람을 만날 일이 많이 줄었지만) 미뤄뒀던 전시나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하는 스스로를 위해 외출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일정을 미리 계획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 때문에 의외로 당일은 여유가 넘치거나, 마음이 편안하다. 어찌 되었든, 쉬는 날 교통카드를 집에 두고 왔다며 헐레벌떡 700미터를 마스크를 낀 채로 질주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전에는 휴일에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셨다.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휴일엔 늘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보내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카페에 가서 책이라도 읽는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래야만 내가 조금 그럴싸해 보였으니까. 그것보다는 사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밀린 다이어리를 쓰거나, 해야 한다고 리스트에 적어둔 것들을 보통 하느라 휴일엔 늘 '알차다.'는 감각 뒤에 진 빠진 감각이 따라붙었다. 휴일까지 무엇이든 열심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제대로 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생의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들을 출퇴근이 빡빡한 일상에 구태여 욱여넣고, 휴일에는 다른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일주일을 살던 언젠가의 나는, 이제 쉬는 날 느긋하게 낮잠을 자거나 느지막이 게으르게 일어나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대충 정리해 둔 설거지거리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두고 흥얼거리며 해치우고는 아무렇게나 대충 커피를 내려 마시며 집에서 아무런 모양새로나 있는 휴일의 오후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쉰다는 게 어떤 걸까, 꽤 오랫동안 나를 달궈 왔던 화두였는데 이제 답을 조금 알 것도 같다. 조금은 특별해도 괜찮고, 가끔은 지극히 일상적이어도 괜찮은. 이 시간 이후에 나를 어떻게 흐르게 두어야 할까를 구태여 고민하지 않고 시간 위에 나를 늘어두어도 괜찮은 것이 휴일이라고. 하루가 끝날 때쯤, 내일이 다가오는 것이 조금 아쉬워도 고민해서 선택한 저녁 메뉴가 맛있어서 잠시 행복해지는 것이 쉬는 날의 소소한 기쁨이고, 그 기쁨이 또 내일을 견디는 무언가가 된다고. 




이전 23화 피아노 선생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