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자라면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자란다
세계최고의 부자 일론 머스크의 10평짜리 집 내부
정오의 햇살을 뚫고 아내의 오랜 벗들이 찾아왔다.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해 서로를 태우고 기다리며 이곳에 닿은 그 여정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은 이미 병실 문턱을 넘어와 있었다. 안부가 인사가 되고 인사가 의무가 되는 세상에서, 몇 번이고 다시 찾아와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이들의 침묵은 그 어떤 위로보다 뜨겁다.
잠시 외출 허가를 받아 휠체어가 닿는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지글거리는 고기 굽는 소리 사이로 익어가는 대화 속에는 삶의 명암이 교차했다. 한 친구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떠나보낸 뒤 홀로 남겨진 고독을 웃음으로 견디고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잠실 중심가의 살고 있는 아파트가 거대한 '돈나무'가 된 집 때문에 오히려 그 그림자의 무게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집이 자라면 그 그림자도 함께 자란다는 것을. 사람들은 그 안에 살지만, 세상은 집 안의 온기가 아닌 집 밖을 배회하는 숫자를 부른다. 50억, 100억... 억 소리 나는 숫자들이 쌓일수록 집은 점점 무거워지고, 그 무게에 눌린 삶은 오히려 가벼워지지 못한다.
우리는 수도권 변두리 낮은 곳에 산다. 우리의 그림자는 짧다. 그러나 밤이 오면 집은 비로소 평온하게 숨을 쉰다. 빚이 없다는 것은 지붕보다 먼저 마음을 덮는 일임을, 이제야 안다. 비교는 타인의 그림자 길이를 재는 일일 뿐, 진정한 삶은 햇볕이 머무는 자리에서 발 뻗고 잘 수 있는 평온함에 있다.
문득 세계 최고의 부자 일론 머스크를 떠올려 본다. 수천 조의 자산을 가진 그가 10평 남짓한 조립식 주택을 빌려 산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습기와 강풍에 강하고 단 몇 시간 만에 완성되는 그 효율적인 공간은, 오롯이 휴식과 작업에 집중하기 위한 현대판 '무문관'이다.
내가 머무는 요양병원의 한 평 남짓한 공간 또한 나에게는 무문관이다. 아내를 간병하며 나를 들여다보는 이 좁은 자리는, 집을 이고 사는 사람이나, 집을 깔고 사는 사람이나, 결국 세월이 지나면 모두 떠나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가르쳐준다.
집은 가벼워야 한다. 삶 또한 가벼워야 한다. 거대한 그림자에 짓눌려 허덕이기보다, 내 몸 하나 뉘일 공간과 숨 고를 수 있는 저녁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집을 잘 지은 것이 아닐까. 가볍게 살다 가볍게 떠나는 인생, 그 무소유의 자유 속에 진정한 정토(淨土)가 있음을 오늘 병실의 작은 창을 통해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