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필유아사 三人行必有我師
공자는 말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중에 착한 자를 가려 따르고, 착하지 않은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글귀를 읽자마자 우리 아들 몽이가 떠올랐다. 착하고 나빠서가 아니라 몽이는 존재 자체만으로 나를 성장하게 만든다. 동생 또몽이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몽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남들과 다른 모습들 때문이기도 하고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붙여진 첫 아이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 전 나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넘치는 자신감에 항상 내 말이 맞고, 생각과 다른 일들을 알려주기 좋아하는 잘난 척 쟁이였다. 무엇보다 선이 진한 사람이라 스스로 정한 선을 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 성격은 아이를 낳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이를 끝없이 고치려고 만했다. 병원의 오진으로 시기를 놓친 이유도 있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진단받고 나서도 어떻게 '중재', '개입'해야 하나 만 찾아다녔다. 엄마라는 이유로 아이를 망치면 안 된다는 압박감과 혼자 감당하기에 벅찬 억울함이 뒤섞여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가해진 폭행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시절 몽이는 불행했을 것이다.. 누군가 '나'를 고치려고 한다는 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니까.
그리고 몽이는 알려주었다. 세상에 그 누구도 틀린 사람, 고쳐야 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딱 한 사람을 빼고. 그 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삼인행필유아사"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마지막에 있다.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의학 전문가도 태어날 때 정해진 유전자를 바꿀 수 없다. 몽이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것도 유전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냥 이 아이가 가진 특징 중 하나이다.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한 명의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줄 뿐이다. 이 생각까지 오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장애가 있는 아이의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건 어쩌면 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내 태도가 바뀌고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 몽이는 그저 사랑스러운 내 아들 일뿐이다.
더 이상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의 과정일 뿐이니까...(다만 몽이가 겪어내야 하는 세상이 너무나 차가운 곳이라 마음이 아프다.)
아직 몽이는 8살이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성인으로 키워 자립시킨 에세이들을 읽으면 수많은 파고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 아이를 지켜낸 훌륭한 위인들을 보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한 편으로는 왜 결론이 아니라 과정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아이의 발달이 늦음을 알고 장애진단을 받고 위기를 겪어 내는 과정에 이야기..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성인이 되려면 먼 8살 아이"를 키우며 이겨낸 마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긴 여정의 길에 올라 있는 엄마이기에 같은 길을 걷기 시작한 부모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만 그런 거 아니라 나도 그랬다고.. 그리고 오늘도 잘 해내고 있다고. 우리가 걷는 길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험난하고 매일 알 수 없는 장애물이 생기지만 그것 또한 길이니까 그저 앞으로 나아가 보자고... 조금씩 걷다 보면 이 길이 험하기만 한 길은 아닐 것이다. 꽃도 피어있고, 냇물도 흐른다. 지치는 순간에 멈춰 서서 맑은 하늘을 보며 쉬어 갈 수도 있다. 무엇보다 그 길 위에는 내 함께 손을 잡고 걷고 있는 몽이와 남편, 그리고 또몽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