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간의 육아휴직을 마치며
한 번씩 그런 상상을 한다.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몽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성장했더라면. 그 상상의 끝은 항상 같다. ‘지금 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나’를 위한 시간이(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몰랐을 것이다. 몽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랐다면, 아이와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 채 일에만 빠져 아이들을 외롭게 했을 것이다.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몽이가 아빠와 엄마가 좋은 아빠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다.
내가 종종 읽는 웹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는 타임머신을 타거나 우연한 타임슬립으로 인해 과거로 회귀한 주인공이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누군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겠느냐고 묻는다면 ‘몽이가 태어났을 때’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까지 공부하고 경험한 것들을 가지고 몽이를 더 행복하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일 은 없을 것이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으로의 나날들을 어떻게 보낼지를 정하는 것이다.
작년 12월 만삭의 몸으로 육아휴직을 시작하며 한 해 동안 몽이를 정상발달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랐고 조급했으며 항상 불안했다 그리고 그 의지는 몽이를 수 없이 다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의 휴직은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구나. 다만 조금 더 아이에게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찾는 시간이었구나.
15개월이 지난 지금 몽이는 유창하진 않지만 필요한 말은 할 수 있고, 시끄러운 장소에서도 각성 조절을 할 수 있어 잘 다닐 수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졌으며 무엇보다 엄마에게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해준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일 것이다 앞으로 학교에 가면 스스로 등원도 하고, 준비물도 챙기고, 한글도 익히고, 물건 사는 법, 대변을 혼자 마무리하는 것 등등 많은 과제들이 남아있다. 방법은 수 없이 많은 반복일 뿐일 것이다.
독서의 매력적인 포인트 중 하나는 ‘책 속의 책’이다. 최근 읽은 ‘열무와 알타리’에 소개된 ‘Welcome to Holland’를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다.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는 건 마치 멋진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여행지는 이탈리아. 가이드북을 잔뜩 사두고 즐거운 계획을 세웁니다. 콜로세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베니스의 곤돌라. 간단한 이탈리아어도 익힐 수 있을지 모릅니다. 무척 두근두근거립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나 애타게 기다린 그날이 드디어 찾아옵니다. 짐을 가득 매고 드디어 출발. 수시간 후, 당신을 태운 비행기가 착륙. 그리고, 객실 승무원이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네덜란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네덜란드? 네덜란드라니요? 저는 이탈리아행 수속을 했고 이탈리아에 도착했어야 하는데요. 줄곧 이탈리아에 가는 게 꿈이었는데."
하지만 비행계획이 변경되어 비행기는 네덜란드에 착륙했습니다. 당신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굶주림과 병이 가득한, 무섭고 더러운 곳으로 끌려온 게 아니라는 것.
다만 조금 '다른 곳'일뿐.
그래서, 당신은 새로운 가이드북을 사러 가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말을 배워야겠죠. 그렇게 한다면 분명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겁니다.
이탈리아보다 훨씬 느긋하게 시간이 흐르고, 이탈리아처럼 화려함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잠시 그곳에 있으면서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면 네덜란드에는 풍차가 있고, 튤립이 피고, 렘브란트의 그림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이탈리아에 오고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는 게 얼마나 멋진지 자랑할지도 모릅니다. 아마 당신은 앞으로도 줄곧 "나도 이탈리아에 가려고 했어. 그러려고 했는데." 하고 말하겠죠. 마음의 고통은 결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야 잃어버린 꿈이 너무나도 크니까요.
하지만, 이탈리아에 가지 못했음을 언제까지나 한탄하기만 한다면 네덜란드만의 아름다움, 네덜란드만의 사랑스러움을 진심으로 즐길 수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보지 않은 곳에서 맞이 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설렘과 일상에서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여행을 준비하는 시기부터 들뜨게 만든다. 몽이와 몽이 동생 또몽이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남편과의 미래는 내가 상상도 못 할 일들로 가득 찰 것이다. 몽이가 학교를 가고 사춘기를 지나고 어른이 되기까지 아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일보다는 슬프고 좌절하고 또 일어서는 일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여정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해 보고자 한다. 당장의 커리어를 버리고 단축근무를 시작하여 나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우리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몽이와 또몽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갈 것이다.
우리 가족은 남 들과는 다른 세상을 여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