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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Jul 27. 2022

"TV가 보고 싶어요!"

성장을 확인하는 순간이 늘 아름답지 만은 않다.



 매년 새해를 맞이 할 때가 되면 혼자 생각의 상자 속에 갇히는 시기가 온다. 아이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압박(이미 8살이지만..)과 새로운 한 해 바뀌는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작년 12월 31일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이 적을 것 같은 곳을 찾아 선택해서 경북 영덕으로 해돋이 여행을 떠났다. 추운 바닷가에서 덜덜 떨며 아이들과 모래 놀이를 하고 감기에 걸릴 것 같아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작년 한 해의 수고를 다독이며 남편과 회 한 접시에 소주를 한잔씩 기울였다. 평소 엄마 아빠보다 더 바쁘게 재활치료를 다니는 몽이와 아직 어린 둘째는 평소 좋아하는 핑크퐁 티브이를 틀어주었다.


서로를 격려하며 늘 네 가족이 함께 있음을 감사했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가 넘어 있었다. 다급하게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제 티브이 끄고 자야 해~!"라고 말하며 티브이를 꺼버렸다.


갑자기 깜깜해진 티브이 화면에 당황한 아이 둘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약속된 개수의 동전을 모아야 티브이를 볼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아무 조건 없이 몇 시간을 보여주다 갑자기 그만 보자고 하니 아이 입장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을 격하게 힘들어하는 아이라 늘 미리 설명해주고 예고해주는데 이미 술이 어느 정도 올라 있는 나나 남편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저 시간이 너무 늦어 아이들을 재워야 한다는 생각뿐...


그때 몽이가 갑자기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티브이가 보고 싶어요"

"핑크퐁 노래 틀어주세요"

"워드 파워 볼 거예요"

"티브이 볼 수 있어요"


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을 동원해 말을 하다가 소리도 지르고 발도 굴렀다가 누워서 엄마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아이가 떼쓸 때는 반응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기에 아파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미리 말을 안 해서 미안해. 그런데 이제는 정말 자야 하는 시간이야. 자고 일어나서 또 보는 거야. 내일 보는 거야."

반복해서 말해주었다. 아이는 결국 떼를 쓰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형을 지켜보던 둘째도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8살이 된 아이는 힘이 세져서 누워서 구르는 발에 맞은 게 너무 아팠다. 하지만, 난 그 순간 너무 아이가 기특했다. 평소 무언가 필요한 순간에만 딱 한 문장의 표현으로 의사표시를 하던 몽이가 연달아 문장을 쏟아내다니.. 어떤 일도 동기부여가 없고 원하는 게 없는 아이가 이렇게 크게 떼를 쓰고 표현하다니...


이때의 상황을 단편적인 모습만 본다면 

1. 평소와 다른 태도를 취한 부모의 잘못, 2.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텐트럼을 보인 아이

로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의 성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또 한 해가 지나갔고 아이의 8살은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생각이 많던 나는 그 일로 머리가 맑아졌다.

평소에 보이는 모습이 다는 아니구나. 우리 아들은 자라고 있구나.

어쩌면 부당한 상황에서 나오는 억울함이 아이를 움직이게 하는구나.


그리고 남편과 같이 반성했다. 미리미리 설명해주는 건 잊지 말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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