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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리나이 Jan 17. 2022

시골 동네 미용실을 찾아갑니다.

싼 가격은 덤


 큰 아이는 영아 시절보다 점점 커가면서 감각 조절의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전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중 미용실에 가는 일이 특히 어려워졌다. 촉각과 청각자극이 예민해 목에 수건을 덮는 것도 힘들고, 알 수 없는 '위~이잉' 소릴 견디는 것도 힘겨워했다. 머리를 한 번 자르러 가면 눈물바다에 아이 옷부터 내 옷(아이를 잡느라)까지 머리카락 범벅이 되기 일수였다. 이발을 하는 건지 아동학대를 하는 건지... 이발은 꼭 해야 하는 건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키즈 미용실'을 찾아가 멋진 자동차에 앉아서 여러 명의 미용사가 붙어 태블릿으로 유튜브를 보여주며 중간중간 하리보 젤리를 입에 넣어주며 깎아도 힘겨워했다.


 친정에 내려간 어느 주말. 아이의 머리는 너무 길어 이발을 해야 하지만 주말이라 웬만한 미용실은 문을 닫았다. 평일에는 둘 다 일을 하니 주말에 꼭 깎아야 하는데.. 다음 주 까지 기다리자니 옆머리가 귀를 덮었다. 그러다 친정집 근처에 동네 미용실을 한 곳 발견했다. '김민서 미용실' 가게 명도 화려한 영어 이름이 아니라 정직하게 원장님 이름을 걸어둔 미용실. 허름한 간판에 미용의자 세 개가 전부였고, 우리 엄마가 좋아하실 만한 친숙한(?) 느낌이었다. 자동차 모양 의자는커녕 엉덩이를 받치는 쿠션도 겨우 찾아 꺼내 주셨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 남편과 달리 걱정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왠 걸? 아이가 울지 않는다. 목에 수건을 두르고 머리를 깎고 있다. 아이가 못 버틴다면 이발기 대신 가위를 이용한 커트까지 고려하고 있었고, 주머니 속 젤리도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아이는 얌전히 이발을 마쳤고, 상어 가족 영상을 보며 엄마가 부상으로 준 젤리를 먹으며 아빠의 이발을 기다렸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키즈 미용실과 동네 미용실의 차이.. 아.... 깊은 깨달음이 밀려왔다. 나는 바보였다. 우리 아들에게는 키즈 미용실의 화려한 자동차 의자와 많은 사람의 보조보다 차분한 배경음악과 집에서와 비슷한 조명 그리고 적은 사람이 훨씬 편안한 조건이었다.


 청각자극이 예민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이지만 정작 어려운 순간에 떠올리지 못했다. 당연히 이발기 소리와 머리카락으로 지나가는 촉감, 목에 두른 수건이 문제가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 부분도 힘들어하긴 한다.. 자르는 내내 움찔거렸으니..) 또 평소 좋아하는 자동차, 젤리, 동영상이 있으니 더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내 머릿속 편견이 정말 무서운 거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다른 이발소나 미용실도 시도 해보다 김민서 미용실에 정착해 친정을 갈 때마다 이발을 했다. 키즈 미용실은 한 번에 3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인데 이곳은 8천 원이면 이발이 된다니.. 1/3로 줄어든 비용은 덤..^^


이제는 집 근처 남성 전용 미용실에서 아빠랑 사이좋게 이발을 하러 다닌다. 아직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거나, 마스크를 쓴 채로 이발을 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아이는 자라고, 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건 나의 평생 숙제.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매 순간 편견을 지우고 오직 아이에게 집중하면 흐려지는 판단력을 다시 붙잡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더 나은 선택을 한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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